북한의 주권 개념, 노동자·농민·인텔리에 ‘군인’ 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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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 헌법은 국방위원장의 임무와 권한(103조)을 ▶국가의 전반사업과 ▶국방위원회 사업을 직접 지도하고, ▶국방부문의 중요 간부를 임명·해임하며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 조약의 비준·폐기 ▶특사권 행사 ▶나라의 비상사태와 전시상태, 동원령 선포라고 밝혔다. 기존 헌법에서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하며 국방사업 전반을 지도한다”(102조)고만 했던 애매한 표현을 구체화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8월 뇌졸중으로 한동안 통치일선에서 비껴 섰던 김 위원장이 현재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1998년 헌법 개정 이후 10년 동안 수정해 왔던 국가 시스템을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완성한 것”이라며 “‘김정일 헌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영남)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조항(117조)은 바꾸지 않아 김정일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김영남 위원장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음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후계자 수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선군사상’을 헌법에 담은 것은 북한 특유의 ‘선(先) 수정, 후(後) 제도화’라는 특성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이 91년 12월 최고사령관에 추대됐던 게 대표적인 예다. 당시 헌법은 주석이 최고사령관을 겸직(당시 주석은 김일성)하도록 돼 있었으나, 92년 4월에야 그 조항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했다. 이번 새 헌법에서 주체사상과 병렬의 지도지침으로 등장한 선군사상 역시 97년에 등장한 이래 10여 년간 논리적 발전을 거쳐왔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그동안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관계에 대해 북한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며 “선군사상이 헌법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 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향점으로 삼았던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도 특징이다. 이는 2012년 강성대국 완성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내세운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 주권은 노동자, 농민, 인텔리가 소유한다고 했던 기존의 개념에서 ‘군인’을 추가한 것도 ‘혁명의 주력군이 군대와 인민에게 있다’는 변화된 논리가 반영된 대목이다. 또 국가의 기능에 인권 존중과 보호를 추가한 것은 국제사회의 눈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명기했던 98년 헌법 서문에 대해선 한 자도 수정하지 않았다. 후계자를 암시할 만한 내용도 들어있지 않다. 이는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계승자 위치에서 통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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