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읽기] 김참 첫시집 '시간이 멈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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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김참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작가 약력

▶인제대 국문과 졸, 부산대 국문과 석사과정중 ▶95년 등단, 99년 제5회 현대시동인상 수상

'문학세계사' 의 '제3의 詩' 시리즈가 내거는 표어는 '낯선 경험, 새로운 충격' 이다.

이번에 그 시리즈의 7번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가 나왔다.

73년생, 현재 가장 젊다고 할 수 있을 세대 시인의 첫 시집. 이 시집을 어떻게 먹을까? 팔다리와 머리를 갑골 안에 움츠려 넣고 꼼짝않는 거북이. 나는 맛있어 보이는 부분을 핥아본다.

"그러면 나는 상상을 하죠. 마을이 조용히 사라지는 상상,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마을은 물고기의 상상 속에나 있죠. 마을은 신기루예요. 신기루를 지나 대상들이 낙타를 타고 가며 이렇게 말하죠. 이상으로 아홉시 뉴스를 마치겠다고 말이에요. " (시 '벽에서 들리는 소리' 중)

맛있겠는데! '이상으로 아홉시 뉴스를 마치겠다고 말이에요' 를 흥얼거리며 거북이같은 시집을 뒤척거려 본다.

팔다리가 있을 자리, 머리와 꼬리가 있을 자리에서 가지가지 색깔의 빛의 피륙들이 환등기에서처럼 쏟아진다.

나른하다.

어디까지가 직관이고 육감이며 어디부터가 인공 환각이고 인공 조작 능력인 것일까? 하긴 굳이 그걸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걸 사이버 문학이라고 부르나? 슬픔이나 우울 같은 감정도, 죽음도 절망도 파멸도 감쪽같이 만들 수 있다는. 감쪽같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나는 능숙하게 자유자재로 펼치는 컴퓨터 그래픽을 볼 때처럼 신기해 하며 감탄하며 김참의 시들을 본다.

좀 감질나 하며, 목마름을 느끼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냥 그가 펼치는 대로 환상을 좇아 보자. 스러지면 그러도록 내버려 두자. '무인도로의 여행' '마술사의 죽음' '항아리' 등의 시는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라는 보물섬의 지도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섬의 보물은 이 지도들이 아닐까?

이 시집에는 '검은' 이라는 단어가 백 번도 넘게 나온다.

(다 세어보진 않았다) .검은 치마, 검은 철제의자, 검은 새, 검은 터널, 검은 종소리… '검은' 은 무엇을 상징하기 보다는 김참의 취향인 것 같다.

'검은' 이라는 말이 그의 뇌를 긁어주거나 울릴 때 그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김참의 이 나른한 환상 세계는 그의 세대의 공유물일까, 그만의 고유한 것일까?

<황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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