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부영 의장 첫 작품 편가르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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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인식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이 의장은 지난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중앙상임위에서 이처럼 말했다. "그동안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사람이 왜 제대로 세금 안 내고 국방의무를 안 했나? 바로 제 나라 제 민족을 배신하고 외면한 사람들이 출세하고 윗자리에 올라가 세금도 잘 안 내고 국방의 의무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 의장은 23일에도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 아마 이 의장의 소신인가보다.

물론 우리에게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나 평범한 일반인처럼 친일파들의 해방 이후 삶도 개인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모든 친일파가 출세해 세금도 안 내고 군대도 안 갔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이런 단순화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정치 이슈화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논리상의 오류로 금방 허물어진다. 논쟁의 첫번째 희생자가 열린우리당에서 나왔고, 바로 자신의 전임자인 신기남씨란 사실을 새기길 바란다.

더구나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대목에 이르러서는 선동의 의도마저 보인다. 우리 사회의 고소득층 고학력층을 싸잡아 세금을 포탈하고 국방의무를 기피한 사람으로 몰기 때문이다. 우리 지도층 가운데는 남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거나 더 불리한 여건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해 성공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사람들까지 민족배신자, 세금 떼어먹고 군대 안 간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 의장은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는가.

지금 바로 옆 나라 일본과 중국을 보라. 그들이 과거에 매달려 있는가. 그들이라고 얼룩진 과거가 없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를 덮어 두고 경제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나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가.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살아남고 국익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만 과거에 매달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난 뒤 이들이 한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이 의장과 열린우리당은 생각이나 해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