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서 돌아온 윤증현 장관 “한국도 세계 경제 룰 제정의 주역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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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 리셉션에서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6일 심야에 만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러 차례 “감개무량”이라고 말했다. 강대국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질서를 그대로 따라야 했던 만년 ‘룰 추종자(rule taker)’ 신세에서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룰 제정자(rule settler)’의 일원이 됐다는 게 가슴 뿌듯하다는 것이었다.

2박4일 일정으로 미국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다녀온 윤 장관을 26일 오후 11시쯤 귀국하자마자 만났다. 피츠버그에서 서울까지 14시간을 날아왔으면서도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열정적으로 ‘G20 정례화’와 ‘5차 회의 한국 유치’의 의미를 전했다. G20 정상회의에 정식으로 끼지 못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재무장관들이 5차 회의 때 꼭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유쾌한 얘기도 털어놨다. 간단히 소회나 듣자고 시작한 인터뷰는 자정을 넘겼다.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의의는.

“G8을 제외한 신흥국 입장에서는 G20 정상회의 정례화가 가장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세계사에 동참하지 못했다. G20이 앞으로 세계 경제사의 큰 축이 될 것인데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세계사 흐름에 뒤지게 된다. 정례화됐다고는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G8 국가들은 아직 G20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2011년 프랑스 회의 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면 G20 정상회의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우리에겐 5차 회의 개최 의미도 크다. 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세계사의 룰 제정(setting)의 주역이라는 뜻이다.”

-G20이 지구촌 사회의 ‘최고 경제협의체(프리미어 포럼)’로 떠올랐는데.

“G20은 그만한 대표성이 있다. 지역별로는 유럽·아시아·미주를,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망라한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포함돼 있고, 세계 경제력(국내총생산 기준)의 85%를 차지한다. 정상 합의문에 G20이 세계 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위(프리미어)의 포럼이라는 표현을 넣는데 일본이 가장 거부감을 나타낸 것은 아쉽다. 우리는 물론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G20에 있는데….”

-한국이 G20 5차 정상회의를 개최할 수 있었던 명분은.

“한국이 선진국과 신흥국 간 가교 역할에 가장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국이 적극적 재정정책을 쓰기로 했는데 한국이 가장 빨리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독일 재무장관도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더라.”

-G20 회의 개최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경제는 정치·사회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전 세계 정상들이 온다는 것은 그 나라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를 이해하고, 한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득이 많다. 우리에게 결국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도적으로 보호무역을 배격하자고 해서 합의를 이뤘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무역금융을 지원하자고 해서 채택됐다. 이런 것들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나, 안 되겠나.”

-우리가 할 일은.

“정말 겸손해야 한다. 우리를 견제하려는 나라가 많다. 국가 이익을 추구하되 조용히 일을 추진해야 한다. 당당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

-정상들의 출구전략에 대한 입장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The danger is not over)는 데 정상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아직 경기 회복이 충분치 않다는 말이고, 출구전략을 논의할 때가 아니란 의미였다.”

-한국이 G20 의장국이 되면 출구전략 시행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출구전략 논의엔 시기(timing), 속도(speed), 순서(sequence), 규모(scale)가 있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추진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문제 삼지 않는 출구전략이 많이 있다. 금리 인상은 맨 나중이다. 국제사회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 혼자 금리를 올리거나 긴축을 하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세계경제가 이만큼 빨리 회복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제공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수출이 좋아진 것도 해외 각국이 정부 수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생각이 다른 것처럼 비쳐지는데.

“이 총재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금리는 자산 시장만 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다는 전제 아래 정부가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것이 공론화 과정이다. 사실 금리 결정이 잘된 건지, 잘못된 건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공론화가 필요한 거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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