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위승희씨 CD시집 '사이렌 사이키' 내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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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시가 멀티미디어를 만나면 멀티포엠이 된다. 시집이나 문학지에 활자로 실리는 시를 CD.비디오.인터넷 공간으로까지 확장한 게 바로 그것이다.

이를 전문으로 할 회사 '현대시 엔터테인먼트' 가 3일 본격 출범을 선언하고 그 첫 작품으로 김정란 (46).위승희 (36) 시인의 CD음반 '사이렌 사이키' (2장) 를 선보여 화제다.

제목의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 위승희 시인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만 찾아오는 에로스의 연인 사이키는 김정란 시인의 또 다른 모습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김 시인은 낭송시로, 위 시인은 가사로 자신들의 시를 사용하면서, 직접 낭송자.가수로 이번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얼핏 잘 알려진 음악을 배경으로 한 시낭송 음반 정도로 생각한다면 새롭지도 않다. 하지만 이번 CD는 다르다.

우선은 연극.영화.드라마 음악으로 유명한 김만중씨와 재즈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 중인 말로씨가 별도로 곡을 만든 점. 다른 하나는 이 CD가 '시의 위기' 를 극복하는 한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CD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는 시의 위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반항투의 화려한 음색을 지닌 음유시인 위승희의 노래가 워낙 매력적인데다가 '불과 얼음의 크리스털' 로 불리는 시인 김정란의 관능적 에너지의 음성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필두로 한 시의 멀티화가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원구식 ( '현대시' 발행인) 씨의 신념에서 다른 희망이 찾아질 듯하다.

"초라한 주변장르에 머물러 있는 시의 낡은 옷을 벗기고 이제 옛날 모든 예술의 아버지요 장르의 왕이었던 시절로의 복귀를 선언한다. " 이어지는 멀티포엠 작품은 한국의 대표시인 20인을 영상으로 담아 비디오로 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초를 목표로 '2백인 밀레니엄 시집' 을 CD 및 인터넷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최남선부터 신예시인까지를 총망라하는 방식이다.

멀티포엠 작업에는 구상.김춘수.김남조.이어령씨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시시각각 다가서는 시의 사망선고를 새로운 열정으로 막아보자는 의미다. 이런 '장벽 허물기' 로 시는 다시 투명한 빛으로 쏟아지는 것일까.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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