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끼리 수주다툼…"한집 식구가 더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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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 건설 부문 등 삼성그룹내 건설 관련 3개 계열사 임원들은 최근 긴급회동을 갖고 '신사협정' 을 맺었다. 서로 지나친 수주 경쟁을 자제하자는 것.

3곳 모두 같은 그룹 계열이긴 하지만 각기 독립적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최근 주택 건설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치열한 수주경쟁이 벌어지자 이런 협의를 맺은 것. 이들은 여러 회사의 참여가 필요한 특정 사업의 경우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진출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열사' 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독립채산제를 통한 '홀로서기' 가 강조되면서 같은 그룹 계열사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룹 기조실.비서실의 '교통정리' 기능이 약해진 것도 한 원인이 됐다. 게다가 연봉제가 도입되고 실적급이 확대되면서 심지어 같은 부서내에서도 경쟁이 전에 없이 격화되고 있다. 이젠 내부간 경쟁이 오히려 외부 경쟁보다 치열해지는 현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우의 과.차장급 등 이전까지 팀장을 맡아왔던 중간 관리 직급의 사원들은 요즘 잔뜩 긴장하고 있다. 올초 전사적으로 팀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그동안 팀장 등 주로 관리업무만 맡아왔던 이들 중간 간부층이 대거 수출 현장으로 재 (再) 투입됐기 때문.

㈜대우의 한 과장급 간부는 "일부 대리급의 경우 상반기에만 수천만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렸으나 중간관리층은 종전과 다름없이 팀원 관리업무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개인 실적 관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고 토로했다.

아직은 팀별 성과급제를 적용하지만 조만간 개인 연봉제가 도입될 예정이라 사내 (社內) 실적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신종유망사업인 인터넷 상거래 사업부문에 현대종합상사는 물론, 정보기술.자동차.중공업 등 무려 4~5개 계열사가 뛰어들어 주력사업 육성 경쟁을 전개중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그룹내 중복사업부문이 있을 경우 그룹 경영기조실에서 조율과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으나 요즘처럼 그룹이란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조정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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