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협상태도 분석] '대화와 대치' 번갈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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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이 우리 정부의 진을 빼고 있다.

베이징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의 모습을 보이면서 금강산에선 관광객을 붙잡았다.

민영미 (閔泳美) 씨를 풀어주긴 했지만 남북 차관급회담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은 서해 교전사태를 물고늘어지면서 다른 한쪽에선 비료를 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다.

한 쪽에서 일이 풀리면 다른 쪽에서 골탕을 먹이는 북한의 집요한 행태는 '다분히 전략적 선택' 이라는 게 우리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북한의 이런 자세에는 대남 협상 측면뿐만 아니라 대내적 필요성도 작용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경제지원 못지 않게 체제유지를 위한 적절한 긴장이 북한 수뇌부로선 절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대화와 갈등이라는 두 개의 카드를 번갈아 꺼내들 수밖에 없다고 우리측은 보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긴장카드를 효과적으로 써먹는데 고심하고 있다는 게 우리측 판단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우리가 주는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 자기들의 자존심 유지.주민통제를 위해 수시로 사건을 일으킬 것" 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서해 교전이나 억류 사건의 재발 가능성이 언제라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군사적 대치냐, 아니면 대화냐' 는 과거의 단선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대화와 대치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 역시 민감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모든 협상창구를 닫아 버리는 식의 대응에서 벗어나 사안별로 이를 처리하는 '분리 대응' 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햇볕정책이 이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일부 황하수 (黃河守) 교류협력국장은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중심축이 햇볕정책의 결과로 과거 군사력과 정치문제에서 일정부분 '경제력' 으로 이동했다" 며 "우리 정부는 이같은 정책방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낼 것" 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도 "극심한 경제난에 따라 북한의 대남 접근자세는 교묘해지고 복잡해지는 면모를 보인다" 며 "서해 교전에서 어뢰정이 침몰하고 상당한 인명피해를 보았으면서도 베이징 차관급회담을 결렬상태로 몰고가지 않는 것은 이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측은 서해 교전사태 당일 (15일) 삼성 관계자들이 평양에 들어가 홍성남 내각총리.강정모 무역상 등과 원만하게 투자협상을 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관계자들은 남북 당국간 대화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대신 '돌발 상황' 이 터질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북한이 체제유지 차원에서 또다른 차원의 도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閔씨 억류사건과 한국계 미국인 카렌 한 체포사건은 북한의 이런 의도에서 연출되는 상황일 수 있다" 며 "특히 미사일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고의적 갈등상황을 연출할 가능성마저 있다" 고 전망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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