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비되는 두 북경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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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베이징 (北京) 남북 차관급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내일 속개될 모양이다.

어제 북한측이 우리 대표단에 전화로 통보해온 데 따른 것이다.

지금 베이징에서는 남북 차관급회담 외에도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다.

이 두 회담의 진행을 비교해보면 참으로 대조적이다.

남북회담은 처음부터 파행이었다.

북측의 누가 대표인지도 사전에 몰랐고, 회담예정시간도 두번이나 연기됐다가 끝내 첫날회담은 열리지도 못했다.

다음날 회담은 열렸지만 북이 일방적으로 서해사태를 우리측 도발이라고 몰아붙이고는 의제인 이산가족문제는 다루지도 못한 채 1시간20분만에 끝나고 말았다.

반면 북.미회담은 어땠는가.

예정시간에 양측 대표가 만났고 예정대로 회담이 진행됐다.

첫날회담에서 8시간 동안이나 토론이 이어졌다.

두 회담은 이처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런 두 회담의 모습에서 북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내일의 2차회담도 우리 대표들이 이틀이나 멍하니 기다린 끝에 북측이 통보하고서야 열리기로 된 것이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북을 포용하고 참는다고 하지만 이런 회담의 과정을 보면 우리측의 자존심이나 회담에 걸린 국민여망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회담을 북한이 하고싶으면 하고 깨고싶으면 깨는 방식으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회담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국민감정이 이를 용납하기 어렵다.

회담을 한다면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며, 합의된 사항을 준수하는 회담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한을 무시하거나 제치고 미국과의 교섭을 우선시한다는 이른바 통미봉남 (通美封南) 전략은 비록 북한이 스스로 내세우는 용어는 아니지만 그들의 행태에서 너무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번 차관급회담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한 북한의 행태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우리는 본다.

물론 북측의 이런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당사자원칙을 무시하고 한국을 배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북한의 태도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다.

북한이 그럴수록 한국내 여론은 그들에게 비우호적으로 조성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의 손해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북한으로부터 수모를 당하지 않는 전략.전술과 정책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베이징 두 회담을 보며 마음 상해하는 국민 심정을 정부는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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