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세협상-세얼굴] 美엔 '미소' 南엔 '냉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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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국 베이징 (北京)에서 북한측은 3개의 협상테이블에 나오고 있다.

하나는 우리 정부 당국과 벌이는 차관급회담이다.

다른 하나는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 석방을 둘러싼 민간기업 현대와의 협상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이다.

3개 회담에 임하는 북한측의 태도는 다르다.

3개 회담의 우선순위를 매겨놓고 적당히 무게를 얹히는 교묘한 전략이 드러난다.

북한의 습관적인 태도대로 미국과의 협상에 비중을 두고 있다.

김계관 (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가 마주앉아 23일부터 벌인 회담은 겉으로 보기에도 진지하다.

호텔객실로 식사를 주문해 먹으면서까지 10시간 넘게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대북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깊은 의견교환을 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얘기다.

북측은 회담일정을 미리 공식 발표하고 회담 뒤에는 대변인까지 내세워 친절하게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우리측과의 회담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차관급회담을 껄끄럽게 이끌어가고 있다.

차관급회담보다 현대와의 협상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인상이다.

차관급회담에 대표단을 파견해놓고도 명단조차 공식 통보하지 않고,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가 하면 첫 회담시간은 1시간20분에 불과했다.

발언내용은 서해 교전사태가 대부분이었다.

회담 뒤 기자회견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뜬 것도 그렇다.

우리측 관계자는 "우리 정부측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시위' 다.

여기에다 우리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지연전략을 쓰고 있다" 고 지적했다.

특히 강경과 유화책을 기술적으로 번갈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24일에는 대화자세로 바꿨다.

차관급회담을 26일에 재개하자고 제안하고, 평양방송에선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하반기에 열자고 주장했다.

북측이 차관급회담 속개 날짜를 26일로 잡은 것은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결산한 뒤 남측과 논의하겠다" 는 속셈이다.

우리측 관계자는 "북한측이 차관급회담을 북.미회담 및 금강산 관광객 억류문제 등과 상호연관 속에서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순차.단계적 해결을 통해 북한이 중시하는 대화상대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현대와의 협상에 적극 응하고 당국대화를 지연시킴으로써 우리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할 가능성이 크다.

남측과의 대화에도 성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부풀리고, 차관급회담의 판을 깨야 할 경우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베이징 =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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