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손숙장관 경질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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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24일 결단을 내렸다.

'2만달러 기업인 격려금' 파문의 손숙 (孫淑) 환경부장관을 경질한 것이다.

형식은 孫전장관의 사의를 金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내용은 경질이다.

이미 전날부터 청와대 참모진 사이엔 그런 분위기가 감지됐다.

파문 확산을 일찍부터 차단하려 한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2만달러 파문에까지 시달릴 수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번 김태정 (金泰政) 전 법무부장관 문제는 시간을 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민심이반 조짐까지 드러난 것이 '좋은 교훈' 이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5만원 이상 선물을 못받게 하는 등의 준수사항을 만들어 공직사회를 조이려는 상황에서 터진 만큼 경질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의 재출발 의지가 담긴 게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다.

孫전장관의 처신은 새 출발에 상처를 준 만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孫전장관이 공인 (公人) 의식을 빨리 갖추지 못한 게 화 (禍) 를 불러왔다" 고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으론 孫전장관을 누구보다 아꼈던 金대통령이다.

94년 정계은퇴 시절 金대통령은 연극인 孫씨에게 격려금을 준 적이 있다.

부인 이희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연극을 구경하고 孫씨를 동교동 자택으로 데려와 "연극에 열중해 살이 너무 빠졌다" 고 안쓰러워하며 1백만원을 준 적이 있다.

孫씨는 동교동 金대통령 자택을 나오면서 울었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자신 소개서에 취미를 연극감상이라고 쓰고, 좋아하는 배우란에 '손숙' 을 적었다고 한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金대통령이 노래방 마이크를 처음 쥐어 보게 한 것도 孫전장관이었다.

경남 밀양 출신인 孫전장관은 오랜 金대통령의 지지자였다.

때문에 金대통령으로선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미련없이 퇴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孫전장관이 '대통령의 고뇌' 를 이해하리란 믿음이 전제됐다는 얘기다.

일단 金대통령은 격려금 파문에선 빠져나왔다.

더 이상 파문이 퍼질 여지가 없다고 청와대측은 기대하고 있다.

金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둘러싼 논란이 남을 수 있겠지만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孫전장관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것으로 믿고 있다.

청와대는 조기 경질이 잘됐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다른 사안들도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 국정관리에 효율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국정운영은 공세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고도 곁들이고 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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