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내 외국인 유학생을 ‘혐한파’로 만들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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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터키에서 온 서울대 외국인 유학생이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유학 생활의 고충은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대학의 허술한 외국인 유학생 관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수업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을 위한 상담센터나 영어할 줄 아는 교직원 배치 등 유학생을 위한 배려가 부족해 힘들고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돈 들여 외국 학생을 초청하지만 몇 년 지낸 외국 학생들이 모이면 한국 비난을 많이 한다는 대목에선 기가 막힐 뿐이다.

지금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7만8000명으로 추정된다. 2003년 1만2300여 명에 비해 엄청나게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이 39.2%라고 하니 놀랄 만한 증가 추세다. 이는 대학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제화 노력을 기울여왔고, 정부도 대학의 국제화 지표를 연계한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적극 추진한 결과다. 그러나 유학생의 양적 확대에만 치우치고 이들을 제대로 지원할 관리 시스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제화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면 지한파(知韓派) 또는 친한파(親韓派)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그런데도 유학 과정에서 한국 대학에 실망을 하고 혐한파(嫌韓派)가 된다면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겠는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외국인 유학생 지원 관리 개선방안’을 각 대학에 보낸 것을 보면 이런 양상이 서울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관련 대학들은 이제부터라도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의식을 전환하고, 지원 시스템을 확보하라.

무엇보다 대학 내에 외국인 유학생을 지원하는 전담 인력이나 조직을 설치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 콜센터’도 만들어 유학생의 각종 애로·불만을 전화나 인터넷으로 상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내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의 적응을 도와주는 ‘버디(buddy)’ 시스템 같은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외국 학생을 데려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만족하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