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심한 보건당국 대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SA) 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지만 세균검사를 하는 임상병리사들은 대부분 대형 병원에는 이미 퍼졌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

서울시내 종합병원 임상병리사라고 밝힌 한 독자는 '슈퍼박테리아' 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본지 보도 (6월 22일자 1, 5면) 를 보고 이렇게 경고했다.

기술이 뒤떨어져 확인하지 못했을 뿐 이미 만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번에 서울중앙병원에서 감염균이 발견된 사례 외에도 VRSA 감염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검출능력이 안돼 '수술 후유증' 으로 숨진 것으로 단순 처리했을 수도 있다.

최근 간호학회에 보고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내 감염률은 9.8%로 미국 (5.7%) 보다 훨씬 높아 VRSA가 병원에 퍼질 경우 비상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보건당국의 대처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도가 나간 22일 "대책이 있느냐" 는 기자의 질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물어보라" 고 떠넘겼다.

기자가 식의약청에 전화를 하자 담당자는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다" 며 별 게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술 더 떠 식의약청 관계자는 23일 오전 뒤늦게 실태파악을 한다며 취재팀에 전화를 걸어와 "중앙일보가 보도한 병원과 의사이름을 알 수 있느냐" 고 기막힌 질문을 했다.

그러나 본지는 보도 첫날 이미 병원이름과 담당의사 이름을 밝혔다.

결국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하고 발빠르게 대처해야 할 담당자가 보도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얘기다.

또 정부가 대책이라고 22일 내놓은 '항생제 오.남용 방지지침' 이라는 것도 권장사항일 뿐 근본대책은 아니다.

정부는 슈퍼박테리아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임을 직시하고 보다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