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원화 값 ‘1년 전으로’ … 수출 호재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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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원화가치가 1년 만에 다시 달러당 1100원대에 들어섰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9.4원 오른 1194.4원에 마감했다. 지난해 10월 1일(118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12일(1109.1원)과 비교하면 달러당 85.3원이 떨어진 상태다.

원화가치가 오르는 이유는 경상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고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월 경상수지 흑자는 261억 달러에 달했고, 외국인들은 올 들어서만 25조원 이상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외환은행 자금운용부 김성순 차장(외환딜러)은 “외환시장에 달러를 팔자는 분위기가 우세해 당분간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외환당국도 달러당 1200원 같은 선을 정해놓고 방어하기보다는 속도조절만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도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데다 금융위기가 진정됨에 따라 안전자산인 달러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 1150원대 전망도=모건스탠리와 BNP파리바 등 해외 금융회사들은 연말까지 원화가치가 달러당 1150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연말께 1150~1160원 선을 예상했다.

하지만 오르는 속도는 점차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현석원 연구위원은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도 점차 줄어들어 원화가치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엔 달러당 1100원대 후반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책금리를 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회의 결과(한국시간 24일 새벽)도 변수다. 미국의 다우존스 뉴스는 “FOMC의 성명 내용이 조금만 바뀌어도 국제 외환시장이 출렁일 것”이라고 23일 보도했다. 금리인상이나 출구전략을 쓸 가능성을 내비치면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수 있지만 별다른 입장변화가 없다면 달러 약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수출기업 채산성 악화=수출기업들은 원화 강세가 부담이다.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달러로 표시한 수출가격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낸 것도 원화 약세 덕을 본 것”이라며 “다만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엔화도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 엔화는 달러당 9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통화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계약을 했다가 원화가 급락하면서 평가손실을 입었던 기업들은 원화가치가 오르면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유학생을 둔 가정의 송금 부담도 줄어든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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