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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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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진해일을 소재로 한 영화 ‘해운대’가 1000만 명이 훨씬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한여름철 수십만의 피서객이 몰려 있던 해운대 해수욕장에 갑자기 거대한 지진해일이 몰려온다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이 영화는, 재난영화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것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듯하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아무래도 지진해일이 발생하는 과정이나 관련 장면 등 과학적 측면의 묘사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엄청난 재난을 실감나게 묘사한 컴퓨터 그래픽 장면 등이 볼만했고 지진해일과 관련된 과학적 설명들도 비교적 그럴듯해 보였으나,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띄기도 했다. 이는 지진해일의 실체와도 관련된 문제여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지진해일은 단순히 해저 부근에서 지진 등이 발생하여 바닷물이 밀려오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학술용어로서 쓰나미(津波; Tsunami)라고도 불리는 지진해일의 실체는 풍랑이나 너울과 마찬가지로 해파, 즉 바닷물이 일으키는 파동의 일종이다. 물론 해저지진 등이 원인이 되어 생기지만, 지진이나 화산이 일어났다고 해서 모두 쓰나미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그 여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쓰나미의 파동이 전달되는 속도는 수심의 제곱근에 비례하기 때문에, 깊은 바다의 경우 초속 수백 미터 이상의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또한 쓰나미의 파장, 즉 파동 하나의 길이는 수심에 비해 두 배 이상 긴 장파(長波)로서, 수 킬로미터에서 수백 킬로미터에까지 이른다.

따라서 쓰나미가 깊은 바다에서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파고의 변화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위를 지나가는 배는 쓰나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통과할 수 있고 심지어 물속에서 작업하는 잠수부나 스킨스쿠버들도 별 피해를 보지 않는다. 영화 해운대의 첫 부분 중, 대양에서 폭풍과 싸우던 선박에 쓰나미로 인한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장면은 과학적 측면에서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깊은 바다에서는 파도가 별로 높지 않던 쓰나미가, 수심이 얕은 해안가로 다가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 파장이 짧아지고 파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해안의 관광객이나 주민들에게 엄청난 물벼락을 쏟아 붓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전문용어로는 ‘천수효과(淺水效果; Shoaling)’라고 설명하는데, 지진해일의 파장은 너무나 길어 파동의 앞부분은 얕은 바다에 도달했어도 그 뒷부분은 깊은 바다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동의 전달속도는 바다 깊이의 함수라고 했으므로, 앞쪽은 진행이 느려지지만 뒤쪽은 여전히 빨라서 그 사이에서 에너지가 응축된다. 즉 넓은 장판이나 종이의 앞부분을 고정시키고 뒷부분을 밀면 구겨지면서 큰 주름이 생기듯이, 응축된 에너지는 높은 파도로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등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영화의 경고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수심이 얕은 서해나 남해보다는 여러 특성상 동해안 쪽을 더 주의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지난 2004년 말 동남아시아의 지진해일 참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