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남북교전은 부부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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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낮 12시 순항하던 국회 국방위가 발칵 뒤집어졌다.

긴급 전달된 차영구 (車榮九.준장)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 때문이었다.

車대변인은 국방부 취재진에게 지난 15일 서해안 교전 이후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서 "부부간에도 싸움 뒤 화목해지듯 마무리가 중요하다" , "한반도에 대화와 협력의 모습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양측 모두에 있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는다" 고 발언했다.

조성태 (趙成台) 국방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국방부가 "북한이 다른 지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고 보고하고, 국방위가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의 북방한계선 (NLL) 침범과 무력도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였다.

그러자 서청원 (徐淸源)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남북한을 부부 사이로 비교한다면 대북 결의안은 무엇하러 채택하느냐" 고 개탄했다.

허대범 (許大梵) 의원은 "격분을 금치 못한다.

그 말은 장관 보고가 허위라는 것인데, 장관은 즉시 '워치콘2' 를 해제하고 전군 비상경계태세도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 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사태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이 車대변인 문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복귀하는 대로 확인 절차를 밟은 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는 趙장관의 약속을 받고서야 일단락됐다.

국방부 대변인이 교전상황을 '부부싸움' 에 비유하는 안이한 자세도 큰 문제지만, 더 큰 걱정은 이런 인식이 과연 車준장 혼자만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날 국방부는 전군 작전지휘관 회의도 연기했다.

미군 핵잠수함이 17일 중 철수한다고 공개 브리핑하는 '성의' 까지 보였다.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온 국민이 불안에 떨었던 교전상황이 불과 이틀 전의 일이다.

군이 정부의 햇볕정책을 의식해 소극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일선에서의 장병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낫는 대로 다시 서해안으로 달려가 조국을 지키겠다" 고 의지를 불태우는 부상병들은 이런 지휘부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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