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이후] '평양방문.접촉중지' 북한 의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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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일부는 16일 밤 북한 조평통이 "남측 인원들의 평양 방문과 접촉을 제한 또는 중지하겠다" 고 나서자 무엇보다 베이징 (北京) 남북 차관급회담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신경을 썼다.

또 평양에 체류 중인 삼성전자 대표단 등 20명의 기업인 신변 문제를 긴급 확인하는 등 사태파악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북한 당국은 지난 94년 7월 김일성 (金日成) 사망 당시 우리 기업인 등의 평양 방문을 일시 제한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언론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평양 방문.접촉의 중단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는 우리 정부가 북한 나진.선봉을 방문하려던 기업인의 출국을 중지시킨 바 있다.

통일부는 16일 밤 손인교 (孫仁敎) 정보분석국장 주재로 열린 긴급 대책회의에서 이번 조치가 일단 평양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와 함께 17일 북한측에 전통문을 보내 조평통 성명의 진의와 당국회담에 대한 평양측 입장을 파악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남북 당국회담 대표단 명단도 함께 보내 북한 당국의 반응을 떠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의 희망 섞인 해석과 달리 서해상 무력충돌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당국회담을 그 대상으로 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단 '평양 방문.접촉 중단' 으로 운을 뗀 뒤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점차 그 폭을 넓혀나갈지 모른다는 우려다.

자기네에 현실적 이익이 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조치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평통 성명이 "당국 사이의 대화가 눈앞에 박두하고 있는 때 서해상에서 전쟁의 불씨를 튕기고 있는 데 대해 특별히 주목한다" 고 밝힌 사실에서도 당국회담과의 연계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내키지 않는 이산가족 문제를 우선적 의제로 논의키로 한 당국회담을 앞두고 교전 사태가 벌어지자 이를 빌미로 잠시 숨고르기를 하려는 의도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이 비등하자 이를 좀더 흔들어 보자는 속셈도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부는 이번 성명이 북한 대남기구인 조평통을 통해 나왔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밀어내기 작전' 이 펼쳐졌던 11일 나온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성명이 군사적 채널에서의 반응이었다면 조평통 성명은 남북관계와 관련한 조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대결에서 완패 (完敗) 한 북한이 대남전략에서 활로를 찾아 이를 만회하려고 할 가능성이 커 정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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