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길 관광프로그램 놓고 서울시-문화재청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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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의 고궁 3곳을 잇는 '도심 고궁 관광 프로그램' 이 서울시와 문화재청 사이의 해묵은 갈등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의 관광자원을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종묘.창경궁.창덕궁을 한번에 잇는 3.6㎞ 고궁길 조성을 추진중이다.

현재 종묘와 창경궁은 율곡로를 사이에 두고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어 관람객들의 왕래가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창경궁과 창덕궁은 맞닿아 있으면서도 중간통로인 함양문이 폐쇄돼 있다.

따라서 두 궁을 잇따라 관람하려면 1.5㎞를 우회해야 한다.

시는 함양문을 개방해 두 궁을 직접 연결시키자고 지난 11월부터 문화재청에 요구하고 있으나 8개월째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창덕궁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훼손 우려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것. 창덕궁은 현재 자연보호와 화재위험 방지를 위해 개별입장을 금지하고 안내원의 인솔하에 15분 간격으로 단체입장객만을 받고있다.

이에 대해 시는 함양문 입구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입장객을 통제하는 방안을 제의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환경조성팀 윤영석 (尹永碩) 팀장은 "창덕궁에서 입장객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함양문을 개방하자는 안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궁원문화재과 이동식 (李東植) 과장은 "창덕궁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서는 현재의 관람객 수도 오히려 줄여야 할 형편" 이라면서 함양문 개방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속 사정을 알고 보면 서울시와 문화재청간의 해묵은 감정 싸움이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주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했던 남대문 접근로가 대표적인 예. 시는 남대문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도록 접근로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의 '진노' 를 산 적이 있다.

'국보 1호의 훼손우려' 가 반대이유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합의도 해주지 않았는데 시책이 먼저 보도된 데 대한 반발심리가 컸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게다가 지난해 서울시 고위간부가 문화재청 소관인 덕수궁을 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싶다는 '욕심' 을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내비친 것도 감정을 상하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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