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햇볕정책 '일조량' 조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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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해 교전사태 이후 정부의 햇볕정책에 시비가 일고 있다.

대북 유화적인 햇볕정책을 폈기 때문에 북이 우리를 얕보고 선제공격까지 한 것 아니냐는 비판론에 "햇볕정책은 실패한 정책" 이라는 햇볕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무력도발을 받으면서 차관회담은 무엇이고 비료지원이나 금강산 관광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햇볕정책은 부분적 문제점을 안고는 있지만 안보와 화해라는 대북정책의 두 기둥은 원칙적으로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게 우리의 기본입장이다.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대북정책은 세 가지 원칙에서 출발했다.

무력도발 불용 (不容) ,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 추진이다.

이 기조는 북한이 외국 아닌 우리의 땅이고 우리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코 허물 수 없는 통일지향적 정책이다.

다만 기조는 옳지만 이번 서해안 교전사태를 겪으면서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정부는 유의해야 한다.

햇볕론은 대결과 화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위기상황이 아닌 경우 화해 측면만 강조될 수 있는 취약점을 지닌다.

그 구체적 사례가 서해안 사태에서 나타났다.

북한군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을 당시 해군이 교전규칙에 따라 즉각 단호히 대응했다면 상황 완료가 빨랐을 것이란 게 군사전문가 분석이다.

상층부 눈치를 보며 이틀이 넘도록 방치한 게 햇볕론 때문이었다면 햇볕론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상이나 공중에서 발생할 때를 가정한다면 '햇볕' 때문에 군사분계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한다.

그런 점에서 안보와 햇볕을 명확히 구별하는 단호한 안보대응자세를 차제에 확고히 해야 한다.

적어도 햇볕정책 때문에 군의 사기가 내려가고 대응 태도가 헷갈린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햇볕론에 집착해서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대북협상 저자세나 무리한 대북지원은 햇볕론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대북경협이나 교류협력은 상호주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무력도발이 있을 때는 지원과 협력을 즉각 중단하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고위급회담이나 정상회담에 연연해서 북방한계선까지 분쟁지역으로 내놓는 약세를 결코 북에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서해 교전 이후 정부는 즉각 금강산 관광이나 차관회담도 원래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대결 이후 긴장완화라는 측면에서나 지속적 대북정책 추진을 위해서도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보복타격' 을 다짐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불허 상태다.

북의 동향을 예의주시한 다음 종래 방침확인이 나와도 늦지 않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을 기조로 하되 북한대응에 따라 일조량 (日照量) 을 조절할 줄 아는 유연성있는 대북정책을 펴야 햇볕론이 제구실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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