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아는 현대의 들러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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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평양을 방문해 북한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갖는 프로농구 현대가 강동희.김영만.장영재 등 기아선수 3명을 합류시킨다.

현대그룹측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진두 지휘하는 대북사업에 그룹의 일원인 기아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아 선수.팬들은 현대의 선수 차출을 '징발' 로 받아들인다. 징발이라는 표현 속에는 부당하다는 불만이 숨어 있다.현대는 이 목소리를 개의치 않지만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현대와 기아는 연고지도 다르고 응원하는 팬들도 다른 별개의 팀이다. 기아팬들은 현대가 기아 구단의 자율성을 짓밟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이에 대해 현대측은 "기아도 현대의 일부" 라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기아선수 차출의 명분도 불분명하다.

현대는 "북한측이 미국선수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아 전력이 약화됐다" 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2명이 포스트맨인 반면 기아에서 차출한 선수는 강동희.김영만.장영재다.

이중 장영재만 포스트맨이고 그나마 아직 실전용은 못된다. 결국 현대는 그룹의 일부로 편입된 기아 구단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농구팬들은 박수교 감독이 기아의 사령탑에 오른 것도 현대측의 입김 탓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 선수를 차출한 것은 의심을 진실로 바꾸는 격이다.

현대는 프로축구에서도 두 구단 (울산.전북) 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있을 뿐 형제구단으로서의 합작은 한번도 없었다.

축구에서 가능한 '경쟁적인 공생의 원칙' 이 농구에서만 부정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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