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안전 보장’ 선물 준다지만 김정일, 북핵 ‘완전’ 폐기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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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북핵 관련 ‘그랜드 바긴’ 구상은 결국 북한에 대한 설득이 성공의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상차림을 했다 해도 북한이 거부할 경우 약효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제안을 북한이 선뜻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 폐기’를 요구한 대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를 “사용후 핵 연료봉 같은 기존의 폐기 대상 외에 이미 만들어 놓은 핵 무기와 제조원료인 플루토늄까지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모든 핵의 완전한 포기란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수용이 어려운 제안인 셈이다.

북한은 핵 개발을 체제 안전보장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연설에서 이번 제안을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포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결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공조를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한·미 등 관련국이 제공할 대북지원 목록은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그랜드 바긴’ 구상과 관련, “비핵·개방 3000 구상에서 제시했던 대북 인센티브를 우리 정부만이 아닌 6자회담 참가 5개국의 공동 제안으로 북한에 제시하려는 것”이라며 “과거 제안보다 북한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 핵 포기를 요구하고 이를 지켜본 뒤 대북지원을 하는 ‘비핵·개방 3000’에서 이제는 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안전보장을 해주는 쪽으로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볼 때도 일단 회담 테이블에 앉히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9일 양자 및 다자대화에 나설 뜻을 밝힌 데다 북·미 양자대화 개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점에서다. “절대로 복귀 않겠다”던 6자회담에 대한 거부감도 다소 수그러드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결국 ‘그랜드 바긴’의 성패는 향후 한·미를 주축으로 한 관련국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대북지원 보따리를 내놓을지와 북한의 수용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대북 설득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도 관심거리다. 

◆“미,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 논의”=미국 정부의 전·현직 관리 등 전문가 20여 명이 18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워싱턴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정상회담 가능성에 동의했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회담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영종·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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