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비료회담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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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년2개월만에 남북 당국자간 회담이 다시 열리게 된다.

김대중 (金大中) 정부 출범과 함께 급진전되리라 예상했던 남북회담이 지난해 비료회담 결렬 후 1년여만에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번 차관급 회담이 비료에만 국한되질 않고 이산가족문제를 포함해 북에서 이미 제안한 바 있는 남북고위급 정치회담으로 확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향후 남북회담의 성공적 진전을 위해서는 지난번 회담이 왜 실패했던가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

남쪽은 상호주의 원칙에 묶여 비료지원 = 이산가족상봉에 집착한 나머지 회담의 유연성을 잃은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북쪽 또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라더니 의제에도 없는 이산가족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불평을 하며 회담을 결렬시켰다.

남북간 회담의 첫 출발이 이토록 좁은 선택의 틀속에서 움직였으니 진전이 있기 어려웠다.

비료지원이란 북의 식량문제를 근원적으로 돕겠다는 동포애적 접근방식이다.

비료를 다른 의제와 맞교환하자면 지원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선공후득' (先供後得) 차원의 긴 안목으로 지원하는 유연한 협상자세가 이번에는 필요하다.

그러나 북쪽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협상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쪽 여론 중엔 우리가 살기도 어려운데 6백억원에 이르는 비료 20만t을 북에 지원하는 이유가 뭔가 하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북은 변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안달이냐는 비난은 민족의 한을 풀 이산가족문제조차 북이 성의 있는 답변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뭔가 줄 것이 있다는 성의표시가 없고서는 대화나 회담이 진전될 수 없다.

최근 한적 (韓赤) 의 비료지원 모금실적을 봐도 일반 여론은 냉담한 상태다.

이 또한 남한의 짝사랑만 돋보이고 북한의 태도가 조금도 변치 않은 탓이다.

남북대화가 성공을 거두고 남북간 상생적 (相生的) 발전을 하자면 남쪽에서

대북지원 지지여론이 조성되도록 하는 북의 태도변화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비료지원방식도 전경련이나 대기업에 의존하는 임시방편을 취해선 안된다.

국회동의를 얻어 남북협력기금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길 권하고 싶다.

국회동의과정에서 남북회담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에 대한 큰 틀의 대북정책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국민적 합의 절차 없는 대북지원은 수시로 시국과 여론에 밀려 표류하기 쉽다.

남북대화를 꼬여진 국내정치의 탈출구로 삼거나 정상회담에 연연해 모든 것을 양보하는 모양새로 가서는 결코 장기적이고 남북 상생적인 대화의 채널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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