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변동속 문학미래 모색… 김병익씨 '무서운…'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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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학평론가 김병익씨 (61)가 현대문명의 변화 속에서 문학의 미래를 모색한 단상들을 모아 산문집 '무서운, 멋진 신세계' (문학과지성사.6천5백원) 를 펴냈다.

헉슬리 소설의 반어적 (反語的) 제목앞에 '무서운' 이라는 직설법까지 붙였으니 그가 내다보는 미래가 어떤 빛깔일지 능히 짐작된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지위가 역전되고, 상업주의 논리가 전면화되면서 본격문학은 설 자리가 위축되고, 그나마 평등주의 정신을 자극했던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자본의 독주를 제동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유전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자본의 논리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양상은 인간을 정체성 위기로 몰아간다.

저자가 짐작하는 회색빛 미래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주목할만한 것은 미래를 추적하는 그의 태도다.

신문사 재직시절, 자신이 일하던 신문의 문화면에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이미자' 의 이름이 한번도 안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고백할만큼 고급문화 종사자.향유자로 자부해온 그에게 90년대 우리 문화의 양상은 분명 당황스러웠을 터. 그러나 그는 권위주의적 당위론으로 과거를 옹호하는 대신 '왜' 라는 변화에 대한 의문제기를 잊지 않는다.

'대중문화 = 저질' 의 공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조목조목 지적해들어간 스스로의 답변에서처럼, 그는 신세대들이 "좋으니까, 그냥" 이라고 넘어가는 현상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일견 전통적이고, 그래서 구세대적 습관으로 보이는 이같은 추론 과정은 거꾸로 직관에 강하게 의존하는 신세대들이 당연지사로 여기는 것들에 한결 민감한 관찰과 평가로 이어진다.

미셸 초스도프스키의 '빈곤의 세계화' ,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 .한스 마르틴과 하랄트 슈망의 '세계화의 덫' 등의 저작과 함께 유하.김영하.김운하 등 국내 젊은 작가들의 세계에 그의 더듬이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그래서 결국, 문학에 미래가 있느냐고? 독자가 조급증을 조금만 억누른다면, 인문학적 성찰을 포기하지 않는 저자 자신의 태도가 함축한 '진정성' 이야말로 '문학의 희망' 이란 답을 찾을 터.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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