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궁금증 남긴 페리 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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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북한방문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대화기류의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한.미.일의 포괄협상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이를 위한 고위급 협상의사도 밝힌 것처럼 전해진다.

그러나 구체성 있는 그의 방북결과는 전혀 들을 수가 없다.

그는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후 그제 서울에서 회견을 통해 "북측에 기존 대화채널을 유지해 나갈 뜻을 전했고, 북측은 북.미관계의 현존 요소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는 정도로만 발표했다.

페리가 수행 중인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은 지난해 북한 핵.미사일 의혹에 자극받은 미 의회가 '의혹 해소' 를 올해 북한관련 예산집행의 조건으로 단 데서 출발한다.

물론 한.미.일 3국이 고위 정책협의회 등을 통해 페리 구상의 구체화나 이번 방북 준비작업에 참여한 것은 당사자.관련국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도 물샐 틈 없는 공조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은 미 의회동향.북한반응 등 안팎의 정세변화에 따라 94년의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말하자면 분수령을 맞이한 셈이다.

우리로서도 대북 포용정책이 과연 열매를 맺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는 정책전환이 불가피한지가 걸린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방북결과는 우리에겐 매우 중대하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문제인데도 그가 서울에서 발표한 북한방문 결과 브리핑은 그런 상황의 중대함에 비춰 볼 때 내용이 간략하기 짝이 없거니와 북.미간 현안에 치우쳐 있어 궁금하고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일 지도자의 대북한 메시지에 대한 북한측 반응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남북한 당사자 대화문제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페리 회견이나 미 국무부 발표만을 보면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채널 활성화에 주력했고,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이른바 '통미봉남 (通美封南)' 책략을 견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는 미 대통령 특사로서 일정한 입장이 있는 페리의 설명 부족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페리 방북의 전말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자 했는지 묻고 싶다.

페리의 한국 도착 이후에도 외교부 당국자들이 김정일 (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성사 여부 등을 알지 못해 밤늦게까지 발을 굴렀다는 소식이고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미국도 우리 국내 일각에서 '말로만 한.미.일 공조를 외친다' 는 비판이 일고 있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우선 페리 방북의 전후사정 파악과 결과분석을 서두르고 장.단기 대책마련에 나서되, 이토록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일반 국민의 궁금증에 그때그때 답하는 성의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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