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로 참아야 의약 분업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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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가 의약분업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내년 7월로 예정된 의약분업 시행이 가시화됐다.

이해 (利害) 상충으로 막판까지 수정을 거듭하면서도 두 단체가 합의안을 마련해낸 것은 환영할 만하다.

또 이 합의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중재노력으로 이뤄진 점도 평가할 일이다.

그렇지만 병원협회.의사협회 등이 벌써부터 합의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어 순탄하게 시행될지 걱정이다.

양측이 합의한 의약분업 모형은 병원.보건소 등 모든 의료기관의 조제실을 폐지하고 항암제.냉동 주사제 등 일부를 제외한 주사제까지 포함시키는 등 완전 의약분업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원 (醫院) 급 이하만 외래환자의 원외처방을 의무화하고 주사제는 제외시켰던 정부안이나 병원급 조제실 폐쇄와 주사제 포함을 모두 1년 유예하는 내용의 국민회의안과 비교해 보면 이번 안이 얼마나 교과서적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이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위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런 병원급 외래조제실 폐지와 주사제 포함 등은 자칫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다.

또 현실적으로는 병원이나 의사단체들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데다 기존 인력과 장비를 축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집중적으로 반발하고 있어 어떤 결말이 날지도 주목거리다.

의약분업은 의약품 오.남용 방지에 따른 국민건강 보호와 약값부담 경감이 가장 큰 목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항생제 내성균 보유국으로 이에 대한 대책은 하루가 급한 실정이다.

우리 국민들의 폐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이 70~77%로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인도 등 의약분업 시행 국가의 평균치 (12.4%) 보다 훨씬 높은 것도 바로 의약품 오.남용 때문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이 지난달 서울시내 의원과 약국 각 1백50군데를 조사한 결과 의원의 54.7%, 약국의 61.3%가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었다.

이제 의약분업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명제다.

업계의 합의안 마련으로 한 고비를 넘긴 만큼 앞으로 정부와 이해단체간 대화나 협상도 큰 틀을 깨지 않는 범위내에서 진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약업계가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는 일이 시급하다.

어느 정도 불리가 있더라도 서로 참아야 정착될 수 있다.

정부는 의약분업 시행 법제화 과정에서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치밀한 검증과 사전점검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수십년 미뤄진 숙원사업에서 행정의 시행착오란 용납될 수 없다.

의약분업은 국민들도 얼마만큼 불편을 참아야 하는 제도다.

그렇지만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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