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혁하자며 변칙처리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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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동여당이 국회에서 정부조직법개정안 등을 또다시 변칙 처리해 정국이 경색되고 있다.

연초 연사흘간 법안을 날치기 변칙 처리한 후 4개월만의 일이다.

민주주의와 경제회생을 2대 국정목표로 제시하면서 출범했던 공동정권은 지금 당면목표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개혁의 본질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비민주적 정치구조와 정치행위를 쇄신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변칙처리를 볼 때 공동여당이 추구하는 정치개혁의 본질과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은 야당이 국회심의를 물리적으로 가로막아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불가피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발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과거 야당시절 여당의 날치기를 당했을 때 비분강개와 절망감에 빠졌던 일이나, 또 여당 강행의 원천봉쇄를 위해 심지어 의장공관에서 국회의장을 사실상 연금까지 했던 전력 (前歷) 을 다 잊었는지 묻고 싶다.

그때와 법안의 성격이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는 견해가 다른 정파끼리의 타협과 절충이라는 과정의 민주화를 무시한다면 성립하기가 어렵다.

독선에 빠져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는 여당이 점점 둔감해져 변칙처리가 자칫 체질이 될까봐 우려한다.

특히 정부조직과 공직사회의 근간과 관련되는 정부조직법안.국가공무원법안 같은 중대한 법안들이 여야간에 충분히 토론.심의.절충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고작 며칠간 총무들끼리 의견을 나누다가 일방적으로 변칙 처리하고 말았으니 이런 행태야말로 정치개혁의 진정한 대상이라는 점을 공동여당은 성찰해야 한다.

야당 또한 자기당 공천파동을 국회운영 보이콧의 명분으로 삼아 법안심의를 봉쇄한 것은 국정심의기능의 포기나 다름없다.

야당은 자기 당 정책노선에 부합되지 않는 법안이라도 여당과의 절충과 타협을 통해 고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고쳐야 한다.

그래도 안되는 것은 민주적 표결에 따르고 그 결과에 책임을 묻는 것이 정도 (正道) 다.

처음부터 안된다고 우격다짐을 하다가 그나마 개선할 수 있는 것도 놓치면서 원안대로 법안이 통과되도록 하는 것은 실제 여당을 돕는 행위나 다름없다.

여야는 서로 자기 잣대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며 민주적 절차의 확립이 정치개혁의 한 요체임을 직시해 정국정상화에 노력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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