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유창혁-서봉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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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白의 무리수에 徐9단은 '부자 몸조심'

제4보 (63~81) =바둑에서도 형세가 불리한 쪽엔 특권이 하나 있다. 전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같은 강수를 던질 수 있는 특권 말이다.

반대로 유리한 쪽은 63처럼 '부자 몸조심' 을 하지않을 수 없는데 이 부자 몸조심과 불리한 쪽의 '특권' 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바둑은 종종 샛길로 흐르곤 한다.

사실 백◎들이 보여주듯 백엔 막강한 응원군들이 좌우에 버티고 있다. 또 바둑을 버려놓은 劉9단은 때마침 속이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을테니 백 정도의 깊숙한 침입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서봉수9단이 그 수를 인정하고 부자답게 63으로 물러선 것도 역시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백는 무리수였다. '참고도' 흑1로 막는 강수가 있었다. 백은 2, 4, 6으로 버티겠지만 흑이 계속 완강하게 포위하면 백은 다 잡히고 만다. 하지만 徐9단의 머리 속에 이런 강경책은 애당초 없었다.

徐9단은 63으로 물러서도 충분하다고 봤고 사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상대에게 묘수가 준비돼 있는지도 모르는데 '참고도' 처럼 골치아픈 수읽기를 하느니 안전하게 72까지 살려주고 손을 돌려 상변 A의 요소에 뛴다면 필승지세였던 것이다.

徐9단은 그러나 73, 75를 선수하고자 했다. 실수였다. 백은 손빼도 살아있는데 일이 되느라 劉9단은 76에 가일수했다. 한데 徐9단은 무슨 일인지 계속 77에 받아주었고 이래서 천금같이 귀중한 선수는 劉9단에게 돌아갔다. 이때부터 바둑은 예상 외의 험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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