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재 간담회] 재계 군기잡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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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 대통령 주재 정.재계 간담회는 당근과 채찍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당초 재계는 지지부진했던 반도체 빅딜을 매듭지은 데다 현대.대우그룹이 추가 자구계획까지 밝힌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책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는 것이었다.

구조조정 성적이 나쁘다고 벌을 주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5대 재벌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를 꼼꼼히 따지고 제대로 실천하면 '인센티브' 라는 상 (賞) 을, 실천하지 않으면 '신규여신 중단과 워크아웃' 이란 벌 (罰) 을 내릴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금융기관에도 마찬가지란 말을 덧붙였다.

정부가 이처럼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5대 재벌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지난해 구조조정 실적부터가 당초 목표에 훨씬 미달했다.

게다가 올해 계획도 대부분 3분기나 4분기로 미뤄놓았다.

강봉균 (康奉均) 청와대 경제수석은 현대와 대우의 추가구조조정과 관련해 '값이 맞지 않아 제대로 팔릴지' 에 대한 우려까지 감추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 일각에선 몇가지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그냥 넘어갔다가는 5대 재벌 구조조정이 자칫 물건너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무튼 이날 5대 재벌은 허를 찔린 셈이 됐다.

칭찬들으러 갔다가 숙제를 더 안고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숙제는 제대로 안할 경우 곧바로 처벌을 받도록 이중삼중으로 족쇄를 채워놓아 앞으로도 재벌그룹은 구조조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구조조정 실적과 평가 = 대우는 부채비율이 97년 4백73.6%에서 지난해말 5백26.5%로 오히려 악화됐으며, 현대도 지난해말 4백49.3%에 달해 올 한햇동안 2백%로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계열사 매각 등 많은 자구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삼성은 목표를 거의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고, 2백75%로 5대 그룹 중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보였으며 LG.SK는 계획만큼 부채를 줄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산매각.자본확충 등 자구노력에서도 5대 그룹은 국내 유상증자 등 손쉬운 방법만을 택했을 뿐 사업부문 매각.외자유치 실적은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는 전체 자구노력 목표는 달성했으나 외자유치와 사업부문매각이 목표의 20~30%만을 달성했으며, 대우는 지난 한해 부채가 17조원이나 증가했고 자구노력도 계획의 19%만을 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부채비율에서 목표에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고 자산매각.계열사 정리.분사화 등도 비교적 착실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LG와 SK는 부채비율을 줄이는 데는 계획을 충분히 이행했으나 계열사 정리.자산매각.자본확충 등 자구계획의 대부분을 하반기로 몰아놓아 1분기 실적이 전체 계획대비 3~6%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됐다.

◇ 구조조정 실천 압박 = 크게 세가지가 종전보다 강화됐다.

우선 분기별로 하던 이행실적 점검을 매달 하기로 했다.

두번째로는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처벌받도록 제재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는 벌칙금리를 물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현대.대우그룹의 지난해 구조조정 실적에 불합격 판정이 내려졌는데도 채권단이 정부 눈치만 보다 경고만 하고 말았던 전철이 되풀이 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구노력이 전체 목표에 비해 극히 미흡하면 즉각 신규여신 중단 등 처벌을 하거나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 이나 법정관리에 강제로 집어넣는 방안도 들어있다.

세번째는 점검.지도를 잘못한 은행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눈치만 보지 말고 채권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정경민.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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