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를 찾아서] 5. 공연기간이 짧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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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공연을 매일 하니까 노래가 익어가는 느낌은 들어요. 청중을 보는 시각도 새로워졌고…. 하지만 특별한 감회는 없습니다. 노래하는 것은 가수의 천직 아닌가요. " 99년5월2일로 사상 첫 1백회 연속공연 기록을 내게될 발라드가수 박광현. 그는 88회 공연을 마친 23일밤 공연장인 대학로 충돌 소극장 (02 - 539 - 0303)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담담하게 소감을 얘기했다.

그러나 라이브사 (史) 적으로 그의 1백회 연속공연은 예외적인 기록이다. 보통 가요 라이브는 길어야 1주일에 10회 미만이기 때문. 한달 이상 공연이 흔한 연극이나 '쉬리' 같이 히트하면 두세달씩 상영되는 영화와 달리 가요 라이브는 2백석 내외 소극장을 기준으로 화요일부터 주말로 이어지는 6일이 일반적이다.

신인의 경우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 정도. 박광현 이전에는 95년 여름 대학로 학전극장에서 34일간 매일 2회씩 68회 무대를 펼친 김광석이 최장 연속공연 기록자였다.

김광석은 이때 누적 공연횟수 1천회를 넘긴 첫 가수가 되기도했다. 가요 라이브가 다른 문화장르보다 공연기간이 짧은 이유는 두가지. 우선 라이브팬 층이 넓지못해 늘이고 싶어도 늘이기 어렵다.

공연기획자 하명남씨는 "국내 라이브팬은 최대 6백만명으로 추산되지만 라이브 자체 보다는 가수 개인에 끌려 오는 사람이 많은 탓에 진짜 팬은 얼마되지 않는다" 고 말한다.

또다른 이유는 가수의 체력 한계. 라이브클럽 홍보담당 주봉석씨는 "발라드가수라도 열창곡이 한두곡씩 있고보면 열흘 넘게 공연하기가 쉽지 않다" 고 말한다.

다만 이은미.김종서.김장훈.여행스케치 등은 체력안배에 노하우가 많은 관록파로 보름 정도 공연은 거뜬하다. 반면 신인들의 경우 나이는 젊지만 처음 받아보는 청중들의 환호성에 흥분, 과도하게 열창하는 바람에 3일 공연에도 녹다운되기 일쑤라고.

특히 록공연은 더욱 길이가 짧아 3일이 대부분. 힘이 많이 들어가는 샤우팅 창법, 2시간동안 마라톤선수처럼 무대를 뛰어다니는 공연 스타일 때문에 '피쏟기' 를 방불케하는 체력소모가 일어난다.

김경호의 경우 마이크 밑에 설치되는 검정색 모니터 스피커가 공연이 끝나면 하얗게 변한다. 비오듯 흘린 땀이 말라붙어 소금덩이가 된 것. 로커중 성대 근육이 일반인의 배나 두꺼워 지구력 1위를 달린다는 윤도현도 공연은 10일이 한계라고한다.

그런점에서 김광석이나 박광현은 체력소모가 적고 부담없는 창법을 택한데다 앉아서 기타를 치는 동선없는 무대를 택한 것이 장기공연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장기공연에서 재미있는 것은 매일 공연을 보러오는 '개근 손님' 이 한두명씩 반드시 있다는 것. 노래순서.멘트까지 줄줄 외우는 이들은 "매일 매일 노래 맛이 다르고 깊어지기 때문" 이라고 이유를 댄다. 대개 조용히 음악만 감상하고 사라지는데도 가수들은 반드시 이들을 알아본다고.

하명남씨는 "공연이 장기화되면 가수 입장에선 음악이 성숙하고 청중은 감상기회가 확대돼 라이브 문화가 살찌게된다" 며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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