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2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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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9) 계몽영화 '상록수'

78년에 나온 '상록수' 는 계몽영화이면서도 비장하리만큼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담았다.

어떤 '큰 덩어리' 하나가 무겁게 누르고 있는 암흑의 시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영화 전편 자체를 그런 식으로 꾸미려고 애썼다.

그러니 영화의 포커스도 계몽보다 현재의 삶 그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당연했다.

지식인들이 농촌에서 살면서 계몽을 하고 생산적인 쪽으로 노력을 한다는 시각보다는 암울한 시대를 '산다' 는 쪽을 더 내세워 만들었다.

이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으로 인해 정치.사회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이런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에 '상록수' 는 우수영화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자존심도 상했을 뿐더러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회의도 들었다.

화천공사가 제작한 이 작품은 심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었다.

잘 알다시피 일제시대 농촌계몽활동에 참가한 영신과 동혁의 이야기였다.

한혜숙.김희라.김형자 등이 출연했다.

이어 나온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는 "이젠 쉬고 싶다" 는 생각이 간절한 시점에서 만든 작품이다.

얼마 있다 내 아내가 된 채령이 내 작품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다.

소년이 바다 위에 표류하는 이야기였는데, 어떻게 바다를 다뤄야 할 지 난 참으로 난감했다.

이미 '증언' 을 만들 때 나는 특수촬영이야말로 섣불리 해서는 안된다고 깨달었던 터라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울리가 없었다.

주인공은 소년과 바다고 바다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한다.

더욱이 표류한다는 이미지를 위해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결국 울릉도 로케이션을 했지만, 자연스런 환경을 그려내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말해,가장 자연에 가까울수록 가장 인공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를 체험한 것이다.

이 작품으로 다소 위안을 찾은 나는 이미 앞에서 다룬 '족보' (3월 19일자 16면 11회 참조) 의 촬영에 매진할 수 있었다.

'족보' 와 같은 해 만든 '가깝고도 먼 길' (78년) 은 비무장지대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낙도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맺은 국민학교 5학년생 인철이 낙도에서 돌아오던 중 난파돼 북방한계선 근해에서 표류하게 되는 것이 영화의 발단이었다.

설정 자체는 물론 억지였다.

그러나 내가 할 영화라고 생각했다.

체제를 달리해서 살아온 아이들이 얼마나 심한 편견을 갖고 자라게 되는 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나는 묻고 싶었다.

79년 새해에 나온 '내일 또 내일' 은 본래 이장호 감독이 하기로 돼 있던 작품이었다.

뭔가 스케줄이 안맞아 결국 그 시나리오가 내게 떨어졌다.

홍파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실제로는 나한봉씨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은 작품이다.

규화와 진우는 어릴적부터 친구지만 성격상 차이가 많다.

같은 소꿉친구인 미연이는 어려서 진우의 짝이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규화의 적극 공세에 손을 들고 그의 포로가 된다.

그러나 출세에 눈이 먼 규화는 진우의 여자친구인 가희가 부잣집 딸인 것을 알고는 그녀를 빼앗아 버린다.

영화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손으로 들고 찍는' (hand held) 촬영을 많이 한 점이다.

당시는 영화의 스타일에 대한 감독들의 관심이 많았던 때였다.

나도 그런 흐름에 동참하는 뜻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건 내가 할 것이 아니다. " 그때부터 나는 '형식' 이란 것은, 철저히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형식을 좇다 내용을 그르치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내 나름의 형식에 담아야 한다는 연출관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을 마치고 나는 채령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미 밝혔듯이 79년 3월의 일이다.

60년대 남작 (濫作) 의 세월동안 덕지덕지 끼었던 묵을 때를 빼려고 부단히 노력한 70년대도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오랜만에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글=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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