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미학과의 스승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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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학과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승들이 있다.

46년 서울대 개교와 동시에 부임했던 박의현 (朴義鉉.71년 작고) 교수와 김정록 (金正祿.82년 작고) 교수다.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朴교수는 재학 당시 미학을 강의하던 우에노 교수의 조교로 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독일의 순수관념철학으로서의 미학을 강의했던 朴교수는 상당히 절도있는 성품을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는 깨알같은 글씨를 빽빽이 적어놓은 강의노트를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朴교수가 정통적인 미학 강의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면 동양미학을 가르쳤던 金교수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자한 성품의 그에게는 학생들과 얽힌 사연이 적지않다.

김지하씨는 "스물한살 때 세상일이 괴로워 원주에 내려가 金교수에게 '사는 것이 힘들다' 고 편지를 썼더니 '도덕경을 읽어보라' 는 내용의 장문의 답장이 왔다. 그 책을 읽어보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고 말한다.

허리 디스크로 몸져누웠던 김윤수 교수에게는 손수 약을 지어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직접 붓을 쥐어주며 사군자와 필체를 가르쳤고 연극 등 과외활동하는 학생들을 잘 이해해줬다고 한다.

金교수의 '실사구시 (實事求是)' 정신과 인간적인 태도는 제자들에게 큰 감화를 줬다.

또 한 사람, 이들과 대면할 기회는 없었지만 30년대 개성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 우현 (又玄) 고유섭 (高裕燮.1905~44) 선생도 정신적 스승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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