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케보키언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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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이 최소 10년, 최대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형이 확정되면 6년8개월간은 가석방도 금지된다.

70세의 케보키언은 더 이상 남의 자살을 도와줄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자살방조죄로 네 번이나 기소되고도 풀려났던 케보키언이 이번에 중형을 선고받은 것은 살인죄로 유죄평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불치병 환자 1백여명의 자살을 도와주면서 '자살장치' 를 만들어 본인이 마지막 스위치를 누르게 한 것과 달리 지난 가을에는 손수 주사를 놓았다.

게다가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CNN에 방영시키며 "나를 잡아넣으려면 잡아넣어라" 고 사법기관에 공개도전을 했다.

사법기관은 방영된 테이프를 증거물로 해 드디어 케보키언을 잡아넣은 것이다.

나름대로 인도적 입장에서 용기있는 일을 해 온 노인에게 가혹한 판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제시카 쿠퍼 판사는 이 판결이 '죽을 권리' 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실정법 위반' 에 대한 심판임을 분명히 한다.

판결문부터 정중하기 이를 데 없다.

"인권을 존중하지 못하는 법이 있다면 고치기 위해 노력할 합법적인 길이 우리 민주사회에는 있습니다. 법을 무시할 권리는 제게도, 선생님에게도,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 쿠퍼 판사는 재판과정에서 내내 정중하면서도 엄격한 태도를 지켰다.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손수 변론을 고집한 케보키언이 효과적인 변론을 하지 못할 때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친절하게 충고해 줬다.

그러면서도 '피살자' 유족의 증언 등 자살권을 옹호하는 주장은 살인죄 구성요건에 관계없다는 이유로 엄격히 배척했다.

그래서 여론에 민감한, 어려운 사건에 대한 매우 훌륭한 재판과 판결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자살권 운동가들이 이 판결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착잡하다.

자살권 이슈화에 가장 앞장선 인물의 중형 판결은 자살권 운동에 큰 타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케보키언의 튀는 행동 때문에 사회의 자살권 인식 양극화를 걱정해 온 사람들도 많다.

매년 10여명씩 자살을 '집행' 해 주면서 의학적 검토를 충분히 했을까 하는 의심도 있어 왔다.

최근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로 임용된 피터 싱어는 인간의 생명이 다른 생물의 생명보다 특별히 고귀할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그는 불치병 환자뿐 아니라 정도가 심한 기형아에 대해서도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장애인협회와 기독교계의 지탄을 받는 인물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21세기로 넘겨질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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