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커피자판기 잔돈을 값지게 쓰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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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삼성건설 해외건축팀 하승룡 (河承龍.39) 과장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커피자판기로 직행한다.

河과장은 2백원짜리 커피를 마시는데 1천원권 지폐만 넣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그 잔돈 8백원을 사무실 회의탁자에 마련된 저금통에 넣고 나서야 그날의 업무를 시작한다.

지난해 9월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사랑의 저금통' 이 만들어진 후 하루의 일과가 돼버렸다.

河과장의 동료 직원 6명이 이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24일. 부서 회식을 하던 자리에서 河과장이 "아들 (9) 이 속한 반에 결식아동 5명이 있는데 급식비를 담임선생님 혼자 충당하고 있다" 는 얘기를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직원 6명은 매일 '1천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점심시간에는 아예 '당신에게 하찮은 1백원짜리 동전, 결식아동의 한끼입니다' 라는 글귀가 적힌 모금함을 들고 자판기 앞에 서있었다.

한달 뒤 동전으로 두둑해진 저금통을 들고 서울 남성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한푼 두푼 모은 돈이었지만 결식아동 6명의 2개월분 급식비였다.

이 소식이 사내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급기야 다른 부서에도 '사랑의 저금통' 이 생겼다.

최근에는 모금액이 1백만원을 넘어섰다.

그리고 지난 8일에는 아이들의 편지가 도착했다.

"저희들이 점심을 맛있게 먹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마음이 상할까봐 비밀로 한 탓에 궁금증이 물씬 배어있는 답례편지를 읽으며 河과장 동료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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