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책]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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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무 산이나 고운 물을 내는건가. 우선 숲이 울창해야 하고 그 속엔 약초도 있고 비도 적당히 내려야지. 사람에겐 독서란 게 약초나 비 같은 거야. 바로 영혼의 영감을 만들어내는 근본이 책 아니겠어. "

차분한 말투로 독서의 가치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黃秉冀.63.이화여대 국악과) 교수. 63년 '숲' 이란 가야금 곡으로 작곡과 연주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 36년째를 맞는다.

그의 책읽기는 때와 장소를 엄격히 가리는 정독형이다.

책은 반드시 잠자리에 들기전 30분에서 1시간정도 서재에서 읽는게 원칙. 그것도 방안의 전등과 책상의 스탠드를 동시에 켜놓고 책상에 앉아 눈과 책과의 거리를 정확하게 30㎝ 유지한 채 책을 읽는 '올바름' 그 자체다.

시력을 중시하는 오랜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책읽기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서점 구경. 요즘도 매주 한차례 서울 북아현동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시내 대형서점을 찾는다.

책 구경하며 책내음을 맡는 것이 그리 행복할 수 없단다.

행여 누구와 약속이 있어도 그 장소는 항상 서점이며 시간만 나면 서점으로 달려갈 정도.

예술이론서.철학.역사서를 주로 읽는다는 황교수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 권하는 두 권은 그 연장선상에서 다소 벗어나 있지만 '가장 인상 깊은 책' 이라고 소개한다.

법정스님의 수상집 '버리고 떠나기' (샘터) 와 '황동규 시선집1' (문학과 지성사) . '버리고 떠나기' 는 올 초 장 (腸)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하며 갖고 갔던 책이다.

그는 "법정스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세속적인 습관 혹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소박한 행복감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고 한다.

황동규 시인의 시는 음악적 영감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영화 '편지' 에 삽입되었던 '즐거운 편지' 에 대해서는 함께 하지 못하는 연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즐겁다' 고 표현해내는 시인의 감각이 놀랍다고 한다.

다음달 독일 하노버에서 열릴 현대음악비엔날레 준비에 한창인 황교수는 독서는 자신의 음악에 있어 샘물같은 존재임을 내내 강조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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