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최재목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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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서질 수만 있다면

펑크 난 바퀴와 차의 핸들

그로 인해

잘 굴러가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폐차가 되고 싶다

부서지는 것들 속에서

어딘가가 좀 부서지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폐차가 되고 싶다

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망가진

- 최재목 (崔在穆.40)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 중

80년대 후반 시를 발표하게 된 사람이라면 아직도 신인냄새가 나겠다.

그런 싱그러운 시인의 첫 시집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 의 표제는 문명 속의 어떤 잔해를 만나게 한다.

지난 시절 랭보가 노래했다.

'오 계절이여 성이여/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라고. 이 주자학의 '반동' 인 양명학에 젊은 날을 바치고 있는 소장 철학자가 불현듯 시인의 얼굴로 나타나서 부서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경험적 고백을 보여준다.

꽃이 되고 싶다기보다 더 꽃인듯 아름답고 참되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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