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관계는 지금] 정재호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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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특구.북핵 문제로 삐걱거려 온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 4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눈에 띄게 복원되고 있다. 중국 정부.기업의 대북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고, 물밑에서의 군사협력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과거의 혈맹으로 유턴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부에서 대북 관계를 '보통 관계'로 가져가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국제사회 규범에 맞출지, 아니면 전통적.지정학적 논리로 접근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 31명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를 한 서울대 정재호(국제정치) 교수는 조사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중 관계 재정립 문제를 놓고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가 조사한 31명 가운데 25명은 중국 정부에 정책 조언을 하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북.중 우호조약상의(한국에서 전쟁 발생 시) 자동개입 조항을 철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한다'가 26%, '동의는 하지만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다음에 해야 한다'가 45%여서 모두 71%가 자동개입 철폐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같은 결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서 "다만 조사대상 전문가들이 정책 조언은 하지만 정부의 고위관리가 아니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조사 결과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와 관련해선 예상했던 답변과 크게 빗나가 놀랐다. 무려 45%가 '핵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확실치 않다'가 52%였고,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3%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경우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엔 '강력한 반대'(19%)와 '제재'(35%)가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도 32%나 됐다. "

-이번 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나.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내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주권의 문제다. 중국이 항상 주장했던 것이 핵 주권이다. 중국의 노세대들은 북한의 모습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국제규범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점이다. 군축과 세계무역기구(WTO) 관련 부처들은 상당히 국제화돼 있다. 그런 점에서 북.중 관계는 움직이는 생물과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지난 4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 이후 북.중 관계가 완전 복원됐다는 평가도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양국 관계가 냉각됐던 시절에 비해서는 좋아졌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모두 만났다. 이들과 함께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공개됐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양국 관계가 본궤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이 그런 예우를 하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의 경제발전이다. 이를 위해 주변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이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중국이 북.중 관계에 대해 과거에 써오던 '총알과 피를 나눈 사이'라는 표현 대신에 '전통적 우호관계'만 강조하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한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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