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95년말이전 비과세가입자 세금 '덤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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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유인춘씨는 5년전 가입한 근로자장기저축의 만기가 최근 돌아와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다 창구직원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94년 이자에 세금이 한푼도 안붙는다는 은행 안내문을 보고 이 상품에 가입했는데 막상 만기가 돼 이자계산서를 받아 보니 세금을 68만여원이나 뗐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곧 만기가 돌아오는 부인 명의의 근로자장기저축까지 합치면 생각지도 않았던 세금을 1백40만원 가까이 부담하게 됐다.

울화가 치민 유씨는 집에 보관해 뒀던 당시 안내문까지 들고가 따졌지만 은행측으로부턴 "법이 바뀌어 그런 것이니 억울하면 국회에 가서 알아보라" 는 핀잔만 들었다.

지난 96년 금융종합과세를 시행하면서 이자소득세율을 20%에서 15%로 낮춘 데 맞춰 비과세저축 상품에도 일률적으로 세금을 물리도록 소득세법이 개정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종합과세는 시행 1년만에 중도하차했고 15%였던 이자소득세율은 종합과세 시행 전보다 더 높은 22%로 올라 비과세저축에도 세금을 물렸던 이유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종합과세 시행과 이자소득세율 인하가 모두 없던 일이 됐으면 당연히 비과세저축에 대한 과세조치도 철회돼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기존 비과세저축에 세금을 물린 지 1년이 채 안된 97년 '비과세 가계장기저축' 이란 비과세상품을 새로 만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유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은행도 괘씸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세금이 붙는 저축 대신 지난해 말 가입기간이 끝난 비과세 가계장기저축에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95년 말까지는 비과세대상이었다 96년 이후 과세대상이 된 상품들의 만기가 최근 속속 돌아오면서 은행마다 세금부과에 항의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품은 근로자장기저축 외에도 근로자장기주택마련저축. 근로자목돈마련저축. 근로자장기증권저축. 근로자증권저축. 장학적금. 국민주신탁 등 6가지가 더 있다.

95년 말 현재 이들 상품의 잔액은 ▶근로자장기저축이 무려 6조1천2백30억원 ▶목돈마련저축이 1조2천2백85억원 ▶장기주택마련저축이 3천2백68억원 ▶장기증권저축 6천5백74억원 ▶증권저축이 3천7백13억원이나 됐다. 가입자수는 1백만명이 넘었다.

당시 정부는 이들 상품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란 점을 감안, 세율을 15%가 적용되는 일반 상품과 달리 10%만 매겼다. 또 95년 말 이전 가입자에 대해서는 3년간 비과세 혜택을 주고 그 이후 생긴 이자에만 10% 세금을 물렸다.

유씨의 경우 94년 3월~97년 2월 사이 이자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그 이후 이자에만 이자소득세와 주민세를 물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기가 길수록 세금혜택이 많은 비과세저축의 특성상 절반 이상의 가입자들이 5년짜리 상품에 들어놓고 이런 점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종합과세 시행과 유보를 왔다갔다한 정부정책 때문에 애꿎은 서민들의 세금부담만 늘어난 셈이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94년 법을 개정하면서 2년 후인 96년부터는 비과세상품에도 세금이 붙는다는 점을 홍보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를 잊어버렸거나 은행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게 사실" 이라며 "다만 기존 가입자들에게도 3년간은 비과세혜택을 줬기 때문에 형평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닐 것" 이라고 해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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