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심층취재 안된 '농어촌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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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6일자에 보도된대로 감사원의 감사로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 문제점들이 잘 드러났다.

이 일은 중앙일보가 이미 연전에 보도했었다.

따라서 중앙일보로선 이전의 보도에서 얻은 자료들과 통찰들을 이용해 이 사업에 대해 깊이가 있는 기사들을 쓸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사업에 관한 간략한 해설과 감사원 보고서에서 추린 몇 가지 사례들만을 실었다.

이 사업은 42조원이 들어간 큰 사업이다.

그리고 이번에 드러난 무능.부패, 그리고 자원의 낭비는 정부 사업들의 평균을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런 사정만으로도 이 사업은 깊이 있게 다룰 만하다.

심층 취재기사를 더욱 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사업의 문제점들에 관한 감사원의 분석이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사업계획의 수립과 집행이 무척 부실했다는 점이 근본적 문제였으며 허술한 감독과 확인이 사업이 잘못 집행될 여지를 크게 늘렸다고 진단했다.

틀린 얘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진단은 논의를 절차의 차원에 국한시킨 것으로 이 사업의 본질적 문제는 놓친 것이다.

이 사업은 틀리거나 비현실적인 가정들 위에 세워졌으므로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 열심히 집행됐다 하더라도 자원의 낭비는 여전했을 터이다.

먼저 물리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몇 십조원의 큰 자금을 단 몇 해에 걸쳐 농어촌에 투자하는 것은 무리다.

돈을 쓰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큰 돈을 쓰는데는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시간을 지나치게 줄이면 어쩔 수 없이 돈이 밖으로 흘러넘친다.

노태우 (盧泰愚) 정권이 추진했던 '주택 2백만호 건설 사업' 은 무리하게 짧은 기간에 큰 돈을 쓰려는 시도가 얼마나 큰 자원의 낭비와 부작용을 불러오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경제적 차원에선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농촌의 인력은 고정됐고 땅도 실질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운데 자본만 갑자기 많이 투입됐으므로 '수확체감의 법칙' 이 아주 뚜렷이 나타난다.

게다가 우리 농부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으므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적고 특히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능력이 작다.

새로운 자본의 유입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들로 구체화되므로 현실에 맞지 않는 기술에 대한 투자에서 나온 손실은 무척 컸을 터이다.

그리고 이 사업이 농어촌에 대한 교부금의 지급이기 때문에 그 지급에 따르는 갖가지 문제들이 나타났다.

교부금의 규모가 워낙 컸으므로 시장가격 기구의 혼란은 극심했고 자연히 자원의 비효율적 배치에 따른 사회적 손실도 컸다.

이번에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사람들은 사업자금으로 다방이나 술집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원금이라도 보전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 뿐이고 그래서 그들이 사회적으로 손실을 가장 덜 끼쳤다는 역설은 이 사업의 본질적 문제를 아프도록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설령 짜임새 있게 계획되고 철저한 감독 아래 집행됐더라도 이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음이 드러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 대한 고려없이 추진됐었기에 자원의 낭비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의 진단처럼 관련된 사람들의 무능과 부패에서 사업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것은 그러므로 올바른 진단이 될 수 없다.

정부의 교부금 사업들은 크든 작든, 모두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농어촌 구조조정 사업' 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내력과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기사는 복잡한 일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닐 것이다.

농가에 대한 교부금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곳은 유럽연합 (EU) 이다.

교부금은 물론 그곳에서도 무능과 부정을 낳았다.

그 쪽 얘기를 함께 다룬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복거일 경제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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