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애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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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10면

아내는 애교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편인 내게는 연애할 때부터 결혼해서 지금까지 애교라고는 부린 적이 없다. 애교가 없다고 말하면 아내는 서운해할지 모른다. 무심한 남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당사자는 나름대로 애교를 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남편은 모른다

가령 이효리처럼 눈웃음을 짓는다면 애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날 과음한 술 때문에 지끈지끈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는 남편이 어떻게 하루 쉴 요량으로 엄살을 피운다고 해보자. 머리에 열도 나고 코도 밍밍한 게 아무래도 신종 플루에라도 걸린 것 같다고 하면서. 그럴 때 아내는 이효리처럼 눈웃음을 짓는다. 술 많이 마셔서 그런 거니까 얼른 씻고 회사 가라고 남편 등을 떠밀면서 말이다. 그럴 때 아내가 짓는 눈웃음을 애교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아내가 남편을 애칭으로 부른다면 애교일 것이다. 확실히 아내는 애칭으로 나를 부른다. 연애할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 그 애칭이란 게 좀 묘하다. 아내는 나를 김씨라고 불렀다. 20년도 훨씬 전이라 가수 김C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 무렵 김씨, 이씨 하는 것은 돈 많은 사모님이 일꾼 부를 때 쓰는 호칭이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그런 애칭을 아무리 코맹맹이 소리로 부른다고 해도 그걸 애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남편에게 통화할 때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면 애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웃으면서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것도 애교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남편의 팔짱을 낀다든지, 웃으면서 팔꿈치로 친다든지, 어깨에 기댄다든지 한다면 역시 애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 여성을 보면 아내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힘차게 고개를 돌린다.

그런 아내도 그 비슷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술 취한 아내는 현관에 들어서면서 남편의 이름을 부른다. 물론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고 웃음도 많아지고 혀 짧은 소리도 낸다. 팔짱을 낀다든지, 웃으면서 팔꿈치로 친다든지, 어깨에 기댄다든지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남편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상득, 득, 자? 벌써? 어엉?”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아내를 남편은 힘껏 밀어내보지만 아내의 완력을 당할 수 없다.
“앙탈 부리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 봐! 김씨이이!”
글쎄 이런 것도 애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이런 애교마저도 사라졌다. 허전하고 섭섭한 가을이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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