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있는 비료지원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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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북 (對北) 비료지원을 하겠다는 자체는 햇볕정책 논리로 보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구조적인 식량난에 직면해 있는 북한을 돕는 적절한 방법은 식량증산의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식량원조가 대증 (對症) 요법인데 반해 식량 자체의 증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식량난의 구조적 해결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여론은 다소 분분하다.

식량난에 빠져 있는 북한을 돕자는 목적에 대한 반대 또는 비판은 아니더라도 그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야당은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방침은 상호주의를 내세운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원칙과 어긋나는 것이며, 대북비료지원은 국민의 부담사항이어서 국회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제기했다.

야당도 대북지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번 정책이 상호주의원칙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그것의 탄력적 적용이라고 반박했다.

또 비료지원 계획이 국민성금의 모금방식으로 취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정치권의 이같은 논란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부의 이번 비료지원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민의 성금모금으로 대규모의 비료를 북한에 제공하겠다는 정책은 실효성있고 당당한 정책추진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최근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물건을 보내려는 국민과 사회단체의 열기가 현저히 식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북비료지원 성금모금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규모 비료지원 계획이 국민모금 방식으로 추진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국조차 국민모금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어서 정부가 우선 비료대금을 적십자사에 빌려줘 이를 집행하고 나중에 모금액을 돌려받는다는 방안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결국 막대한 비료대금은 국고에서 나가거나 일부 대기업에 준조세 형태로 '수금' 하는 구태가 연출될 공산이 짙다.

너무 편의적인 정책추진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적십자사를 앞세운 것도 보수여론을 의식한 얕은 꾀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북한이 비료지원을 해달라는 아무런 공식요청도 없는 터에 우리가 못주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확고한 판단으로 이를 추진한다면 비료지원은 정부재원으로 실행하고, 이를 국민과 국회에 적극 설득하는 것이 도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비료지원이든 또는 다른 경제협력이든 정부가 떳떳하게 국민에게 알릴 것은 알리고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밟을 절차는 밟는 자세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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