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6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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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7장 노래와 덫

외모는 봉환과 비슷했지만, 성깔은 그처럼 당차거나 고집 있어 보이지 않았으므로 묵호댁이 휘두르기 편할 것 같았다. 잠자리가 고적해서 얻은 사내라는 것을 승희가 알게 된다면 가게를 내놓으라는 심통을 부릴 것 같아서 찜찜했지만, 욕구가 명치끝까지 닿아 있었으므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난 후에야 그 열정이나 농탕질이 봉환과 비교해서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사내를 물색하고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심성이 착하고 무던한 그가 가게일을 거들고 추스르는 일에 애성바르기가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변씨라는 사람이 무시로 찾아와서 가게 꾸려 나가는 꼴을 살핀답시고 이것저것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오랜만에 심씨와 회포를 풀었던 이튿날부터 찾아오기 시작하고부터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씩 가게를 찾아와서 뚜릿뚜릿 살피고 돌아가곤 하였다.

변씨가 떠돌이 다방마담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는 것과 그가 까닭없이 가게를 자주 들르게 되었다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가 않았다.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울게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낮에 들렀던 변씨에게 가게문을 닫을 때쯤 다시 들러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변씨는 정확하게 그 시각에 맞춰 다시 가게로 들러 주었다. 맥주 한 병을 대접하면서 술꾼들의 행패로 밑가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였다.

그런데 변씨의 대답이 뜨끔했다. "이때까지는 혼자서 가게를 꾸려 왔지만 며칠 전부터는 그게 아니잖어. 맞춤한 사내까지 얻어서 밤마다 질탕하게 벌이고 있다는 것을 늙어서 귀가 어둡다는 난들 모르겠나. 공연히 앓는 소리로 안개피우지 말어. 봉환이란 놈이 자취를 감춘 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그 홍길동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것도 확실하잖어.

그런데 묵호댁이 이제 와서 객지에서 흘러든 군서방까지 곁에 두면서 가게를 꾸려 가겠다는 염치는 뭐여? 난 묵호댁이 그런 일까지 저지를 줄은 몰랐네?

백보 양해해서 혼자서 가게를 꾸려 나가자니 이것저것 걸리적거리는 것이 한두 가지 아니어서 기둥서방이라도 두게 되면, 위안이 된다고 치자, 그러나 승희가 어째서 이 번듯한 가게를 묵호댁에게 전세 주고 객지로만 떠돌고 있는 것인지 미련한 묵호댁도 지금쯤은 알고 있겠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젠 봉환이와도 이별했다는 뜻이고 승희의 쓰린 속내도 안중에 없다는 뜻이 아니겠나. 그동안 묵호댁이 열심히 일해서 잇속깨나 챙겼다는 뜻도 있겠지. "

변씨에게 다른 꿍심이 있다는 것이 역력하게 들여다보이는 대꾸였다. 그러나 가게를 내놓으라는 결정적인 한 마디는 하지 않았다. 심씨와 저지른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그릇이었다.

하루 밤낮 동안 잠자리를 같이 해 보았자 신통할 것이 없는 심씨와 사귄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게는 가게의 일이었으면 좋겠고 심씨와의 관계는 그것대로 독립되어 거론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변씨의 입을 통해선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묵호댁으로선 당장 명쾌한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더니 지금의 자신의 처지가 꼭 그 짝인 것 같았다. 원래 구변도 없었던 묵호댁은 말을 잃었다.

그러나 변씨의 꿍심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변씨는 새로 신접살림을 차린 젊은 여편네로 하여금 가게를 맡아 꾸려 나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묵호댁도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니었다. 구변은 없지만, 강단도 있고 얼치기 사내들 못지않은 완력도 있었다. 그녀는 가게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세 기한도 아직은 6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변씨가 대리인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도 비위에 거슬렸다.

그러나 묵호댁은 변씨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만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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