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등지고 '쉬리' 보러간 통일부 간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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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일 오후 정부 세종로청사 맞은편 문화관광부에 통일부 간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쉬리' 를 보려고 강인덕 (康仁德) 장관과 정세현 (丁世鉉) 차관을 비롯한 30여명의 간부가 나타난 것. 이들이 6시 시작시간에 맞추느라고 서둘러 자리를 떠 업무는 일찌감치 마비됐다.

영화상영에 들어가자 삐삐.핸드폰도 꺼버려 연락조차 끊겼다.

같은 시각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과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의 면담결과를 발표하고 후속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교통상부도 언론보도문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갖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데 대북문제 주무부처인 통일부 간부들은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통일부도 할 말은 있다.

페리 방한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康장관은 페리와의 면담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 구조조정안 발표로 몸살을 앓고, 대북정책 부서에 '비상' 이 떨어진 때 영화관람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마침 통일부 간부들은 이날 청와대에 초청돼 金대통령 주재로 오찬을 함께 하며 공직생활에 매진하라는 격려를 받았다.

통일부의 한 직원은 "대북정책 총괄부서 간부들이 '페리' 를 외면한 채 '쉬리' 를 좇아간 것은 심했다" 고 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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