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10년만에 위기]'시민운동 종가' 분열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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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시민운동의 상징이자 시민단체의 맏형을 자처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실련) 이 '사분오열 (四分五裂)' 될 위기에 직면했다.

사무총장 재신임을 계기로 지난 두달간 계속된 내부갈등이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근자들의 잇따른 사표제출.독립단체들의 분리추진 등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89년 창립 이후 최대의 존재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지난 1월 유종성 (柳鍾星) 사무총장이 모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이 '참모진의 대필에 의한 표절' 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이후 실.국장을 비롯한 상근자들은 柳총장의 사과와 자진사퇴를 촉구했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근자 24명이 일괄사표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주장하는 '柳총장 사퇴' 논리는 대략 세가지.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외형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관료화' 라는 내부모순에 빠지게 됐고 실무간사들의 의견이 거의 수렴되지 못하는 시민단체내 '비민주적'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 柳총장이 혈연관계상 친여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사항이다.

하지만 경실련의 '주인' 격인 볼런티어 전문가그룹의 결론은 柳총장 재신임외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서경석 초대총장의 정계진출, 유재현 2대총장의 '테이프사건' 에 따른 불명예퇴진에 이어 柳총장마저 중도사퇴한다면 경실련의 도덕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조직내 매너리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일부 상근자들은 내부분란만 부추겨왔다" 며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조직개혁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최고 의결기구인 상임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이번 사태 주도의 책임을 물어 하승창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문광승 경제정의연구소 사무국장의 해임을 결의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강경책은 또다른 반발을 불러와 이필상 (李弼商.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정의연구소장이 "상집위의 일방적인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 며 사표를 낸 데 이어 지난주까지 상근자 11명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했다.

또 16개 지역 경실련도 수차례 모임을 갖고 별도의 지역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경실련내 4개 독립단체 가운데 일부는 12일 경제정의연구소 이사회 이후 중앙 경실련과의 완전독립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아직 일부 전문가와 상근자 그룹에서 마지막 중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번 주말을 고비로 경실련 분열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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