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실직자 6명 동대문구 개설 야학서 강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공공근로자 황병수 (黃炳修.39.서울동대문구제기2동) 씨는 지난 3일 저녁 1년여만에 다시 '교단' 에 섰다.

교실은 동대문구용두2동 새마을금고가 제공한 5층 회의실. 간이 테이블을 책상삼고 회의실 의자는 걸상이 됐다.

K대 수학교육과 졸업후 가르치는 일을 천직 (天職) 으로 알고 7년여간 학원에서 강사생활을 해온 그는 97년말 학원에서 경력교사를 '정리' 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최근까지 그는 동대문구가 제공한 공공근로에 참가, 청량리 오스카시장과 경동시장을 돌며 노점 단속을 했다.

그러다 동대문구청이 실직한 공공근로자들 중에서 교사자격증.강의 경력을 가진 고학력자를 선발, 시범 운영에 들어간 '청소년 배움터 (일명 야학)' 에서 강의를 맡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동대문구 용두.제기.전농동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실직자 자녀들이다.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분주히 굴리며 낯선 선생님의 얼굴을 주시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앞으로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공부해 봅시다. "

다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된 감회 탓에 긴장된 그의 목소리에 사춘기 제자들은 대답 대신 키득대거나 소근거렸다.

90분의 중2 수학수업을 위해 3시간 가량 준비한 그는 학습 보조자료를 한장씩 돌렸다.

바로 그때 전보람 (15.청량중2) 양이 할아버지 (全泳鎬.73.동대문구이문2동) 의 손을 잡고 '등교'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 근처에서 30분간 버스를 타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 全양의 할아버지는 "가난해도 배움이 제일이다.

한달에 10만원 하는 학원과외비가 부담스럽던 차에 무료로 영어.수학 야학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녀를 데리고 왔다" 며 全양을 黃선생님에게 인사시켰다.

수업 분위기가 무르익자 학생들의 입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서먹서먹함도 점차 누그러졌다.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黃씨는 "지식을 전하는 것 외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용기도 북돋우겠다" 고 다짐했다.

김민정 (金旻貞.15.휘경여중2) 양 등 이 학급 7명의 제자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긴다" 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정재현 (鄭在鉉.23.여.강의 경력 2년) 씨가 지도하는 영어수업이 계속됐다.

공공근로 야학은 용두2동 새마을금고 (928 - 4998) 는 물론 동대문 구민회관 (920 - 4593) 과 장안동 청소년독서실 (2247 - 3120) 등 모두 3곳에서 동시에 6개월간 진행된다.

黃선생님처럼 야학에 나선 공공근로자들은 6명. 모두 대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전공하고 교사자격증을 지녔거나 학원강사 경력이 있다.

이날 야학에 참가한 중 1~3년생 77명은 학년별로 8개반에 편성돼 매주 월~토요일 오후 5~8시에 영어.수학을 무료로 배우게 된다.

문의 동대문구 실업대책반 (920 - 4689~90)

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