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언론' 중앙일보에 바란다]한승주.공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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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동안 독자로서, 또 가끔씩 글을 기고해온 사람으로서 중앙일보가 발전하고 성장해온 것을 마음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다.

그러던 중 마침 이번에 중앙일보가 분리.독립을 통한 제2의 창사를 맞이한 데 대해 많은 기대를 갖는다.

신문의 1차적인 기능은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보도기사가 더욱 정확성과 객관성, 그리고 깊이를 가질 것을 주문해 본다.

흔히 신문들은 보도기사의 정확성과 깊이보다 '특종' 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신문으로서 특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정치문제이건, 경제문제이건 간에 취급하는 사안 (事案) 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해 주는 친절이 아쉽다.

동시에 중앙일보가 바깥세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뿐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문의 또 다른 사명은 세상사 (世上事) 의 잘잘못을 가려주는 일이다.

논설에서 정론을 펴고 소신껏 사안.사물을 판단해줄 것을 주문한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외부의 입김을 피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신문들에 소신대로 글을 쓰라는 것이 무리인 것은 잘 안다.

그러나 제2창간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바로 독자성과 독립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라면 앞으로의 중앙일보는 더욱 용기있게 나가주기를 바란다.

또한 스포츠나 문화의 기사를 취급하는 데 있어 너무나 흥미위주가 될 때 신문은 권위를 잃고 옐로 저널리즘으로 타락해버릴 우려도 있다.

끝으로 우리나라와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수 있기 바란다.

지난 97년말의 외환위기와 관련해 언론도 그것을 적시에 경고해주지 못했다는 면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너무도 당장 눈앞의 일만 몰두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중앙일보의 건투와 비약을 기대한다.

- 한승주 (58.고려대 정치외교학과)

5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나는 이젠 신문을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농구선수의 이야기뿐 아니라 이제 세상의 일을 비록 그것이 대부분 악으로 가득찬 것이라 해도 가르쳐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 애가 신문을 들고 있는 걸 보면 가끔 불안해진다.

신문이 단지 사건을 전달하는 종이조각이 아니란 것을 불현듯 깨닫는 것이다.

아이는 이제 하나의 매체를 통해 세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살인.강도사건과 노사분규, 정치인들의 행보까지. 아이는 사건뿐 아니라 그런 사건들을 읽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부모들처럼 나 역시 아이가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러나 또 한편 나는 바라는 것이 있다.

아이가 이 세상 사물을 객관적으로 냉정히 바라보며, 불의한 일에 대해선 설사 자신에게 당장 손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어린 시절, 신문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오빠가 묻혀오는 최루탄 가스나 내 친구의 아버지가 끌려간 이야기가 그 당시 신문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존 매체에 대한 불신은 그래서 그 이후 깊어져만 갔었다.

이 급변하는 세계의 먼 훗날, 나는 더 이상 아이의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눈은 무뎌지고 머리는 굳어져 소통이 불가능하게 될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나는 이런 꿈을 꾸어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네가 혼자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면 중앙일보를 펼쳐보라고 말하는 꿈! 이 세상에 완벽히 공정한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 신문을 읽고 나면 너는 한 사건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너의 판단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너의 판단을 적어도 틀리지는 않게 도와줄 것이라고.

그 신문은 네가 아주 어렸던 시절처럼, 더 이상 힘있는 자와 돈 가진 자들만의 편은 아니라고 말이다.

- 공지영 (36.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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