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51.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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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7장 노래와 덫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잡힌 손을 매몰스럽게 뿌리치며 봉환을 노려 보았다.

"도대체 댁이 누군데, 전화 거는 것까지 간섭하고 들어요?

별꼴 다 보겠네. " 코방귀까지 뀌면서 서문식당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봉환은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식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쫓아가서 어깨를 낚아챘다.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이바구 좀 합시다. " "얘기는 무슨 얘기가 있다고 이러세요. 난 댁하고 조용한 데 가서 나눌 얘기가 없어요. " "희숙씨한테 충고 쫌 할락꼬요. "

"충고요? 기가 차서…. 댁이 누구라고 내한테 충고를 해요? 남이 들으면 웃겠어요. " "밤중에 빤스까지 훤하게 들따보이는 치마를 입고 거리를 쏘다니는 여자가 어딨어요. " "내참 기가 차서…. 댁이 뭐길래 남 옷 입고 다니는 것까지 간섭이에요 정말?" 맥이 빠지는 대거리였다. 그녀의 단호한 대응은 봉환이보다는 설득력이 있고 이성적이었다.

그녀가 몇 번인가 되풀이해서 말했던 것처럼, 사실 봉환이가 누구이고 뭐길래 길거리에서 여자를 붙잡고 충고를 한답시고 수선을 피고 있는 것일까. 그 언니가 꾸리고 있는 식당의 단골손님이란 것을 빌미로 둔부의 곡선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맞대놓고 험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여자의 주관적인 자질이며 생활행태일 뿐이었다. 설혹 하반신의 모든 것이 노출되도록 홀딱 벗었다 할지라도 봉환이가 기를 쓰고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봉환은 가슴 속을 치밀어오르는 안쓰러움과 충고의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녀가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토로했던 말 때문이었다.

댁이 누구이며 뭐길래 충고를 하겠답시고 법석을 떠느냐고 반문하는 말은 분명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말인데도 은근한 핀잔과 더불어 원망의 심정이 잠재돼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왜 똑 같은 말을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일까. 까닭이야 어디에 있든 봉환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저녁내내 주방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니인 주인 여자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언니도 어쩐 셈인지 그와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에 주인 여자가 대전까지 동승하겠다고 나섰다. 대전의 장보기를 위해서였다. 남편인 손씨와는 몇 번인가 동승한 적이 있었지만, 그녀의 언니와 동승하기는 처음이었다.

대전까지 가는 차중에서 언니는 그녀의 신상에 대한 내막을 비교적 소상하게 털어 놓았다.대전에 그녀의 애인이 있다는 말은 흰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애인이란 작자가 어깨는 아니었지만, 애당초 직업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건달이라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안면도의 백사장 포구에 있는 언니네 식당으로 오게 된 것은 그런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던 언니의 성화를 견디다 못한 결과라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기 위한 언니의 계획은 그러나 아직은 별무효과인 것 같다고 폭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대전에서 안면도까지 제 발로 걸어왔다는 것은 언니의 설득이 어느 정도는 먹혀 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그녀의 이성적인 성찰과 판단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른이 넘은 년인데도 지는 아니라고 우겨대지만, 남자를 보는 안목이 곰발바닥이에요. 몹쓸 귀신이 씌었는지 하필이면, 신세 망칠 백수를 만나서 뭘 어쩌겠다고 저 지랄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뭐예요. 생선가게 망신 꼴뚜기가 시키더라고 제 주제에 고집은 있어서 몸에 좋다는 언니말을 귀담아 들어줘야 말이지요. " 대전까지의 동승을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주인 여자의 고육지책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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