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아마부족, 학교 지어준 영국노동자에 장로 추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영국인 노동자 5명이 아프리카의 부족 장로가 됐다.

"18일 케냐의 동부 기리아마 부족은 5천여 부족민 전체가 참석한 가운데 5명의 영국 남자들을 부족 장로로 추대하는 엄숙한 의식을 3시간 동안 가졌다.

장로로 추대된 영국인들은 의식용 복장을 하고 손에는 과일.채소가 담긴 부족전통의 바구니를 들었다. " 영국 일간지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최근 보도다.

이 일간지는 "아프리카 부족이 외국인을, 그것도 집단으로 장로로 추대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 이라고 보도했다.

이야기는 지난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서머싯주에 사는 마크 오처드 (32) 는 건축공사장 인부. 가족과 함께 '강렬한 태양을 찾아' 아프리카 케냐로 휴가를 떠났다.

케냐 관광을 하던 오처드의 가족은 우연히 와타무라는 이름의 마을을 방문했다.

여기엔 '다바사 학교' 라는 간판의 허름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가는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햇빛만 가린 임시교사에는 40여명의 어린이들이 글과 숫자를 배우고 있었다.

오처드는 선생님과 잡담을 나누던 중 학교교사 신축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오처드의 머리속에는 자꾸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공터의 건축자재들이 떠올랐다.

마침내 그는 동료인부들에게 "2주간 무보수로 케냐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 고 묻고 다녔다.

의기투합한 4명의 동료들이 합류했다.

항공사로부터 할인항공권을 얻은 이들은 2백50㎏이나 되는 장비 및 자재들과 함께 케냐로 향했다.

도착 즉시 공사 시작. 오전 5시 기상, 15시간 작업, 오후 9시30분 취침' 의 강행군이었다.

전기.수돗물도 없고 40도가 넘는 더위의 악조건이었다.

동료 한명이 잠시 의식을 잃기도 했으나 소금물을 먹어가며 계속했다.

현지주민들에게는 큰 구경거리였다.

백인이 일을 시키는 것은 봤어도 땀흘리며 일하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구경꾼의 숫자가 2천명에 이르기도 했다.

보름간의 작업이 끝나고 튼튼한 벽돌건물이 세워졌다.

오처드는 스와힐리어로 '영웅' 이라는 뜻의 응굼바드라는 이름을 받았다.

벽돌공인 앤디 디포드 (33) 는 카덴지 (날쌘 사람) , 실내장식가인 데이브 레이너 (36) 는 응구마 (웃는 사람) , 미장공인 크리스 피셔 (40) 는 차디 (일꾼) , 레그 대니얼스 (66) 는 차웨카드조나가오 (현명한 노인) 라는 이름을 받았다.

지혜를 뜻하는 코끼리와 용기를 뜻하는 사자를 새긴 장로 지팡이도 하나씩 받았다.

추대식은 새 장로들이 자기들이 지은 학교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