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묵은 이방'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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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에 '경영마인드' 를 도입한다는 것이 지방자치 실시 이후 대유행이다.

관료주의적 행정패턴을 깨뜨리고 공격적.경쟁적 업무분위기를 만들겠다는 뜻은 좋다.

그러나 행정과 경영의 근본적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오히려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기업은 망해도 되지만 자치단체는 망할 수 없다는 것이 첫번째 차이다.

기업의 투자자들은 이익을 노리고 투자한다.

사업이 여의치 않으면 손해를 안고 물러서서 다른 사업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자치단체의 행정에는 주민들의 생활이 걸려 있다.자치단체가 파산해 수돗물 공급.쓰레기 수거 등 행정서비스를 중단하면 사회가 통째로 무너진다.

두번째 차이는 공무원의 철밥통에 있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비능률은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회사원에게는 파면의 위협으로 일을 열심히 시킬 수 있지만 공무원에게는 안 통한다. '규정대로' 만 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일을 열심히 하게 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또 하나 차이는 수뇌부의 가변성에 있다.

기업에서는 우두머리가 잘 바뀌지 않고 그 밑의 일꾼들이 자주 바뀐다.

거꾸로 정부나 자치단체에서는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꼭대기가 자주 바뀌고 밑의 일꾼들은 그대로 있다.

'묵은 이방이 신관사또보다 낫다' 는 옛말을 보면 옛날에도 사정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안정성을 위주로 하는 공무원사회 분위기가 지나친 집단이기주의로 흐르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접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지방자치 시행과 민주화의 성과는 관청 민원실에서부터 느껴진다.

"공무원도 사람입니다. 맡은 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고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데 왜 반대하겠습니까. 개혁과정에 원칙이 없을 때 반대할 뿐인데, 이것을 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수구론자로 몰아붙여야만 개혁이 된다는 것인지…. " 20년째 지방공무원을 해 온 K씨의 말이다.

개혁을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아직도 이 사회에 '개혁' 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가 만만찮은 까닭은 개혁을 내세워 온 사람들의 위선과 독선에 있다.

'수구세력의 조직적 저항' 을 핑계삼기보다 '묵은 이방' 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야 사또노릇도 제대로 된다.

공무원집단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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