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지분 상향 사실상 백지화…재벌 은행 소유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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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가 또다시 표류, 사실상 백지화될 운명에 처했다. 재벌의 은행소유에 대한 현 정권 핵심부의 거부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가운데 일단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통해 대기업들이 거듭난 모습을 확인한 이후에나 다시 논의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조흥.강원 합병은행 소유도 어렵게 됐다.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22일 "정부는 지난해 은행법 개정 때 빠진 1인당 지분제한 상향조정 (현행 4%를 10% 이상으로) 문제를 올 상반기중 재추진할 계획이었다" 면서 "그러나 일단 재벌개혁에 매진한다는 취지에서 이 계획을 백지화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은행법을 개정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길을 열어줄 경우 재벌들은 구조조정보다 은행소유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될 것이란 게 정부의 판단"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흥.강원 합병은행을 현대가 소유하게 될 것이란 일부 관측에 대해 "은행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며 정부는 순자산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할 것이기 때문에 현대의 합병은행 지분이 4%를 넘는 일도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경부가 이처럼 물러선 것은 청와대측의 강력한 반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동 (金泰東)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우려하면서 "대기업의 은행 소유는 아직 시기상조" 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기업 구조조정과의 선후 (先後)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면서 "金수석이 있는 한 은행법 개정은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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