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형만한 아우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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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자 (長子) 우선의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 '형만한 아우없다' 는 속담을 들어보지 않고 자란 둘째나 셋째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속담은 왜 생겼을까. 장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한국적 정서의 발현일까, 아니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 일단 건강면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의학계의 대체적인 견해. 덴마크 역학과학센터 연구에 따르면 형제중 늦게 태어날수록 백혈병 발생률이 높았다.

73~92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아기 2백여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맏이는 둘째나 세째로 태어난 어린이에 비해 백혈병 발생률이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 반면 조사대상중 가장 늦게 태어난 네째 아기는 백혈병 발생률 역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유는 뭘까. 연구를 주도한 티네 베스터가르트박사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산모의 연령증가에 따른 신생아의 면역력 저하현상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다른 유전질환을 가질 확률도 막내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니 맏이가 다른 동생들보다 건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가 하면 아이를 낳고 난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임신해 출산한 아이는 먼저 낳은 아이보다 실하지 않고 몸무게도 덜나간다는 보고도 있다. 산모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기같은 감염질환은 어떨까. 유아때 혼자 큰 맏이는 여러 형제 사이에서 자란 둘째나 셋째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도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여러 아이들의 접촉으로 감염의 기회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

이런 저런 의학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개 맏이가 건강한 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이 정설. 첫아이를 얻은 기쁨에 정성껏 보살핀 맏이가 줄줄이 있는 동생들보다 튼실할 수 밖에.

요즘은 어떨까. 대부분 자식수도 둘 이하이고 자식에게 쏟는 관심도 맏이.막내 할 것 없이 비슷해졌으니 '형만한 아우없다' 는 말도 꼭 옛날같지는 않다고 봐야 겠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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