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 배경과 전망]日경기 살리려 엔 희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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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아시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하락이 불가피하고, 엔화 약세는 그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 이라는 하야미 마사루 (速水優) 일본은행 총재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엔약세는 한국.중국 등 경쟁국의 수출감소로 이어지고, 엔강세를 보고 아시아를 찾아온 외국자본의 이탈을 촉발, 아시아 시장을 또한번 뒤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엔약세 배경 = 일본 경제가 처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근본배경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99년 0.5% 성장, 2000년 2%대의 본격적인 경기회복' 을 국제공약으로 내걸고 대규모 국채발행에 들어갔다.

올해 일본 정부가 새로 발행하는 국채는 31조엔 규모로, 누적 국채발행 잔고는 3백조엔에 이를 전망이다.

기관투자가들은 당연히 채권가격 하락 (금리상승) 을 전망하고 채권매입을 꺼렸다.

이에 따라 장기금리가 한때 2%대를 웃돌자 당황한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인하했고, 대장성은 채권매입을 재개했다.

금리가 떨어지면서 엔화가 약세로 반전된 것이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原英資) 대장성 재무관은 "엔 - 달러의 목표환율권을 설정하지 않겠다" 고 밝혀 엔약세가 추가로 진행될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하야미 일은총재도 "단기금리가 제로 (零)가 되어도 좋다" 고 말했다.

통화증발과 금리인하에 따른 인위적 인플레를 감수하더라도 경기회복을 우선하겠다는 일본 정책당국의 의지가 확인된 것이다.

일본 경제의 허약한 체질도 엔약세의 배경이다.

외국 투자가들은 금융개혁과 경기회복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일본의 전략 자체를 불신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금융개혁을 위해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할 경우 시장에 불안심리를 초래,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 환율 전망 = 일단 달러당 1백19~1백23엔대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상반기중 1백30엔 정도의 엔약세를 점치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20일의 서방선진7개국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담이 '엔약세 저지' 라는 기존 입장에서 선회, 일본 경기회복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엔약세를 용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엔약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처럼 달러당 1백45엔까지 밀리는 급속한 엔약세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금융 시스템이 쇠약해진 중국에 위안화 평가절하 압력을 가중시키고, 한국.태국 등의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또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도 급속한 엔약세는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엔약세가 G7회담을 앞둔 일본의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일본이 금리를 내려도 소비와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만큼 인위적인 인플레라는 극약처방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단기금리가 0%에 가까워 더이상 내려갈 여지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자연스럽게 금리가 상승, 엔화 약세가 저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 - 달러 환율 향방은 장기적으로 일본의 경기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올해 1분기중 경기가 바닥을 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이 경우 일본 경기회복 - 엔화 강세 반전 - 아시아 경제회복의 선순환도 기대된다는 것이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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